한국 축구대표팀은 17일 아랍에미레이트(UAE) 아부다비에서 끝난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C조 예선에서 1위를 확정했음에도 팀 내엔 머쓱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지막 교체선수로도 부름 받지 못한 이승우(21ㆍ베로나)가 경기 막판 저지른 ‘물병 킥’ 사건 탓이다. 자칫 59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던 돌발 행동이었다. 파울루 벤투(50) 감독은 물론 선배들이 항명으로 여기고 질타를 해도 이승우로선 할 말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벤투는 경기 후 이승우에 악수를 청했다. 기성용(30ㆍ뉴캐슬) 역시 이승우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이승우가) 어떤 마음일지 이해된다. 잘 타일러보겠다”고 했다. 기성용이 이승우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승우가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겪은 고충을 충분히 헤아렸기에 가능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말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만난 이승우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호주 원정 평가전 명단에 자신이 제외된 걸 두고 “아쉽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라며 애써 웃었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출전 의지가 강했던 그로선 최종명단 발표 전 마지막 평가전 소집 제외는 꽤 쓰라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벤투호가 호주 원정 평가전을 치르는 동안 소속팀 훈련에 집중한 이승우는 베로나 주전 멤버로 자리잡았고, 최근 6경기 연속 선발출전하며 득점포까지 가동했다. 당시 “아시안게임 참가를 끈질기게 반대한 베로나 경영진을 끈질기게 설득해 김학범호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던 그는 “아시안게임 차출을 허락한 베로나에 마음의 진 빚을 덜고 싶다”고 했다.
이승우는 아시안컵 최종명단에서 탈락한 뒤로 자신의 위치(베로나)에서 묵묵히 마음의 빚을 갚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상호(광주)의 부상으로 대회 첫 경기 직전 합류 통보를 받으며 상황이 급변했다. 아시안게임과 달리 소속팀도 소집 거부권이 없었던 터라 이승우가 대표팀에 합류하는 덴 큰 문제가 없었지만, 소속팀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이승우가 소속팀에 지게 된 마음의 빚도 더 커졌다.
‘물병 킥’ 사건 이튿날 맏형 이용(33ㆍ전북) 등 선배들이 이승우를 두바이 한 식당에 데려가 삼겹살을 사주며 다독였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선배들은 막내의 치기 어린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소통을 꺼내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출범 후 10전 무패를 달리는 ‘잘 되는 집’ 벤투호의 비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현장에선 비 온 뒤 땅 굳듯 이번 일을 계기로 이승우도, 대표팀도 더 단단해질 거란 시선이 많다. 이승우는 18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두바이 NAS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열린 훈련에 참가해 바레인과 16강전 준비에 나섰다.
두바이(UAE)=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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