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얼짱 농부? 됐고! ‘송깨언니’라고 불러주세요”…농부 6년차 송주희의 바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얼짱 농부? 됐고! ‘송깨언니’라고 불러주세요”…농부 6년차 송주희의 바람

입력
2019.01.18 11:00
수정
2019.01.18 14:58
0 0
'들깨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 농부 송주희씨. 송주희씨 제공
'들깨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 농부 송주희씨. 송주희씨 제공

강원 화천군에서 들깨 농사를 짓는 송주희(31)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는 독특한 해시태그(#)가 있다. ‘#데일리룩’ 대신 ‘#농촌데일리룩’, ‘#회사스타그램’ 대신 ‘#밭스타그램’이 붙어 있다. 송씨는 매일 ‘농촌데일리룩’을 입고 밭으로 출근한다. 6년차 농부인 그에겐 밭이 곧 직장이다.

송씨는 2017년 공영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얼짱농부’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그가 제일 싫어하는 별명이다.

송씨는 1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얼짱, 미녀 농부라는 말은 정말 별로죠. 처녀 농부는 최악이고요”라고 말했다. 송씨의 꿈은 ‘들깨 전문가’다. 그런 그가 불리고픈 별명은 ‘깨선생’, ‘깨언니’다. “미녀나 얼짱이라는 수식어 대신 진짜 농부로 불리고 싶죠. 개인적으로 ‘송깨언니(성씨 ‘송’과 ‘깨를 심는 언니’를 합친 말)’라는 별명이 좋아요”라는 바람이다.

왜 하필 ‘농부’가 됐나 궁금했다. 그는 “엄마”라고 했다. 4년 전 그의 어머니는 메주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마음의 병까지 얻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서울에 사는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던 송씨는 고향 화천으로 내려왔다. 농사가 생업인 그의 부모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올 때 당시 남자친구는 “참 멋있다. 농촌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다”며 송씨를 따라왔다. 두 사람은 그 후 부부가 됐고, 송씨 부부는 곧 부모가 된다.

일하러 가기 전 송주희씨 부부는 종종 재미있는 사진으로 서로를 응원한다.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일하러 가기 전 송주희씨 부부는 종종 재미있는 사진으로 서로를 응원한다.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남편이 음악하는 친구라서 그런지 농촌 생활이 자유로워 보였다던데, 속았죠. 완전히 속았어요.” 통쾌하다는 듯 송씨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실제로 농사는 바쁘다. 매일 아침 해가 뜨면 어김없이 일어나 온종일 일을 하고 해가 져도 공장에 가서 마무리 작업을 하다 보면 늦은 밤이다. 부부의 애칭은 ‘개미와 베짱이’를 연상케 하는 ‘깨짱이’지만, 실상은 ‘두 일개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송씨가 키우는 작물은 콩, 고추, 들깨, 배추, 옥수수 등 주로 밭에서 나는 것들이다. 계절에 맞게 새로운 작물을 심고 거두는 일상이 반복됐다. 가장 공을 들이는 작물은 들깨다. 그는 “중국산 들깨에 맞서 한국 들깨를 지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깨선생’다운 포부였다.

송씨가 농사를 짓는 곳은 화천 오음리다. 치킨집이 3개나 있다는 건 자랑거리지만, 읍내 사는 친구가 ‘우리 동네엔 패스트푸드점이 있다’고 자랑하면 이내 입을 다물고 마는 산골짜기 마을이다.

강원도 산골 작은 마을에 사는 송씨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는 인스타그램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그가 판매하는 작물과 가공품 전시장이기도 하다. “일을 나갈 때도 늘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면서 수시로 찍어요. 소비자 입에 들어가는 농산물을 어떻게 길러 수확하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거든요. 저희 고객들이 믿고 드시는 이유가 아닐까요.”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농부는 새까맣고 몸빼바지만 입는다? 아니에요. 우리 동네 어르신들 다 청바지 입으세요.” 송씨가 농부로서 겪는 가장 답답한 편견이다. 송씨는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모글리(동명 소설 속 주인공으로 동물들 손에 자라 피부가 까무잡잡한 캐릭터)’로 불렸다. 피부가 유난히 까매서다.

“2년 전쯤 방송에 나올 때 PD님들이 조명을 과하게 쳐주시더라고요. 제가 나오면 갑자기 화면이 밝아져요(웃음). 방송 후 인터넷 댓글을 보는데 ‘무슨 농부 피부가 저렇게 흴 수 있냐’고 하는데, 피부 하얗다는 말은 이때 생전 처음 들어봤어요. 요즘엔 일하기 전에 선크림은 꼭 바르고 있고요. 지금 인스타그램 사진들에도 피부가 하얗게 나온다고요? 셀카 애플리케이션덕분이죠. 요즘 필터가 다양하고 좋아요!”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송주희씨 인스타그램 캡처

송씨는 농사가 낯선 청년들에게 농업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도 자기 자식들은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일하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 땅과 우리 농산물은 누가 지키나. 좋은 먹거리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농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시골 농부 6년차 송주희씨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