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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택배상자 쌓고 교도소 지키고… 당신이 잠든 새, 잠을 희생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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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택배상자 쌓고 교도소 지키고… 당신이 잠든 새, 잠을 희생하는 사람들

입력
2019.01.17 18:07
수정
2019.01.17 19: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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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우편집중국. 오월의봄 제공ㆍ© 윤성희
동서울우편집중국. 오월의봄 제공ㆍ© 윤성희

달빛 노동 찾기

신정임 등 지음ㆍ윤성희 사진

오월의봄 발행ㆍ214쪽ㆍ1만4,000원

‘밤을 잊은 그대에게’. 1964년 첫 전파를 탄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밤을 잊는다는 표현은 종종 낭만적이다. 다음날 등교나 출근 등을 생각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상념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행위는 삶의 작은 여유를 뜻한다. 하지만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한국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밤을 잊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노동을 의미한다. 남들이 잠든 시간 무거운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밤을 새워 몸을 부려야 한다.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우정실무원들에게 밤은 곧 노동이다. 우편집중국은 각 우체국에 접수된 우편물과 소포 택배 등을 모으고 분류해 배달지역으로 내보내는 곳이다. 우편물 등의 중간 집산지인 셈이다. 택배가 늘어나면서 이곳의 가장 바쁜 시간은 밤중이 됐다. 밤 9시에서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하는 인력이 가장 많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내려오는 택배 상자를 화물 운반대에 반복해서 쌓는다. 팔과 다리 무릎, 어깨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세다. 우정실무원 대부분은 비정규직. 처우는 노동 강도와 반비례한다. 시급은 최저임금을 따르고, 주휴와 야근에 따른 수당 이외 받는 돈은 없다. 7년째 택배 등과 싸우며 낮 밤이 바뀐 삶을 살아온 이중원씨는 동서울우편집중국을 이렇게 비유한다. “사막으로 치면 여긴 고비 사막이 아니라 사하라 사막이에요.”

하위 교정직 공무원 L씨도 야근에 치인 삶을 살고 있다. 야근(오후 5시~다음날 오전 9시)을 하고 집에 가면 오전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의 집에서 직장인 교도소까지 가는 데 2시간 넘게 걸린다. 차를 운전해 출퇴근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졸음이 무서워 운전대를 잡지 못한다. 심야에 교도관 1명이 수용자 200명 이상을 관리할 때가 적지 않다. 주간-야간-비번-휴무로 돌아가는 4부제 근무라지만 정작 L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못 쉰다. 남들은 철밥통 공무원이라고 부러워하지만 L씨를 비롯해 그의 동료들은 이직을 꿈꾼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으며 주로 날을 새워 일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곳곳에 있다. 거동이 힘든 환자들을 옮기고, 기구나 용기를 세척하는 등 병원 내 여러 잡무를 담당한 병원지원직도 노동, 특히 밤샘 노동에 시달린다. 공장 등에서 단체급식 조리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밤은 육체적 고통의 시간이다. 아침 준비를 위해 오후 6시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 퇴근한다. 책은 야근으로 날을 지새는 이들을 찾아 들은 목소리의 기록이다.

반복된 야근은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 2016년 보건의료 근로자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잠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53.2분이었다. 잦은 야근으로 신체 리듬이 깨진 결과다. 밤샘 노동이 ‘2급 발암 물질’이라는 근로자들의 말은 자조를 넘어선다. 야근에 시달리는 어느 조리원은 이렇게 말한다. “밤에 잠을 자니 몸이 달라졌다”고. 책을 읽다 보면 노동은 신성함도 엄중함도 아닌, 차가운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책은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으로 개선된 처우도 담는다. 결국 근로자가 살 길은 뭉치는 것뿐인가.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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