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지도자는 18%... “男임원 성폭력 조사ㆍ처벌 한계” 女지도자 30% 할당제 요구
지난 2016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은 총 21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그 중 여성 선수가 획득한 메달은 40%가 넘는 9개다. 대표팀 선수 204명 중 절반 가량인 101명이 여성이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8개 메달 중 무려 7개나 여성 선수들이 책임졌다. 여성이 수확한 메달이 33개 중 7개(21%)에 그쳤던 1988 서울 하계올림픽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하지만 올림픽 등 세계 대회에서 여성 선수들이 이룬 성취에 비해 체육계 여성 고위 행정가와 지도자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스포츠계 ‘미투’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여성 선수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기 위해선 남성 중심 체육계의 유리천장부터 깨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2017년 발간한 ‘여성체육인의 일과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여성 임원은 전체 51명 중 7명인 13.7%에 불과하다. 시ㆍ도체육회의 경우 522명의 임원 중 여성은 고작 63명(11.4%)이다. 정현숙 탁구협회부회장은 지난해 여성스포츠리더 토크콘서트에서 “생활체육 임원들을 제외할 경우 전문 스포츠 분야 여성 임원은 실제 7%밖에 안 된다”고 토로했다. 여성 고위층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국제 추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조직 구조도 마찬가지다. 대한체육회 산하에는 19개 분과위원회가 있지만 그 중 여성 스포츠 조직은 여성체육위원회뿐이다. 예산은 1억원 안팎이다. 여성 교수로 구성된 한국여성체육학회와 전직 선수로 꾸려진 한국여성스포츠회가 있지만 모두 체육회 외부 조직이다. 2015년 태권도계 성폭력 실태를 조사했던 고재옥 서울과학기술대 스포츠재활학과 교수는 “여자 선수들이 내부적으로 성폭력 등 문제를 제기해도 처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남성 임원”이라면서 “‘어차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여성 지도자 비율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지도자 1만9,965명 중 여성 지도자는 3,571명으로 17.9%에 그친다. 전체 선수 13만5,637명 중 여성이 3만1,572명(23.3%)을 차지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체육회 등록 단체 65개 중 6종목(레슬링 복싱 가라데 씨름 카바디 킥복싱)에는 여성 지도자가 한 명도 없다.
전문가들은 여성 선수들이 은퇴 이후 스포츠 행정가나 지도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구조적 문제에서 찾았다. 보통 지도 경력을 쌓고 경기 기술위원회 등 중간 관리직으로 올라가는 수순이 일반적인데 여성들은 스포츠 스타가 아닌 이상 남성 중심의 카르텔의 유리천장에 막혀 지도자나 관리직의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부여 받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 여성 선수들이 스포츠계에 남는 것을 포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체육인들의 경우 경력이 단절되면 다시 복직하기 어려워 출산 및 육아 휴가를 사실상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박영옥 전 스포츠개발원 원장은 “국가대표 여자 지도자들은 진천선수촌을 기피한다”며 “태릉은 주말에 집에 가서 아이를 볼 수도 있지만 진천은 수유실 등 여성 코치들을 위한 시설이 전무해 지도자 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여성 선수들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지도자 할당제 등 제도 개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신자 여성스포츠회 회장은 ”여성 지도자 30% 할당제를 도입해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현장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지도자 채용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정책 지원 서비스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체육계 인사가 체육회 위원회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 전 원장은 “체육인 여성 소수를 형식상 임원진에 넣는다고 해도 폐쇄적 문화에 주눅 들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인권과 여성 등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외부 인사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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