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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켈러허의 유쾌한 민주주의

입력
2019.01.18 04:40
수정
2019.01.18 13: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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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코믹한 기내 방송으로 유명하다. “우리 비행기의 흡연실은 양쪽 날개 위에 있습니다. 담배 피우실 분은 그곳에서 맘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영화도 상영됩니다. 제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라거나 “우리는 라스베이거스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카지노를 원하시는 분은 비상구에 비치된 낙하산을 타고 뛰어 내리시면 됩니다. 생존 가능성은 카지노에서 돈을 딸 확률과 똑같습니다”식이다. 20년이 다 된 유머지만 웬만한 요즘 개그를 능가한다. 1971년, 첫 운항 이후 40년 연속 흑자, 9ㆍ11 테러 직후 ‘항공업의 잔혹기’에도 해고 없는 흑자 달성, ‘일하고 싶은 회사’ 1위 등 실적도 화려하다.

이 유례없는 성공은 창업자 허브 켈러허의 ‘퍼니지먼트(Fun+Management)’에 기인한다. 그러나 어찌 유머 경영만으로 가능했겠는가. 그의 치밀한 전략과 직원 존중 철학을 빼놓아선 안 된다. 자동차와 경쟁하는 ‘저가 항공’의 새 장을 개척한 일은 블루오션 전략의 시초이자 전범이다. 당시에는 중소 도시를 가려면 대도시의 허브공항을 거쳐야 했다.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켈러허는 도시와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포인트 투 포인트’ 전략을 고안해 문제를 해결한다. 불필요한 서비스를 없애고 가격을 대폭 낮췄다. 임직원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생일을 손수 챙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되는 신화의 근본적 요인은 ‘켈러허 민주주의’라고 나는 믿는다. 공감, 평등, 자율을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는 그의 ‘별난(quirky) 경영’에 오롯하다. 공감은 민주주의의 행위 양식이다. ‘날개 위 흡연실’ 멘트는 잘 짜인 서사와 반전도 백미지만, 흡연을 참아야 하는 애연가의 고충을 먼저 이해하고 다가가기에 흐뭇함을 더한다. 기내 흡연에 대한 경고 방송을 대체한 공감의 유머는 민주주의의 의미 있는 실천이다. 사우스웨스트의 ‘계급 타파’는 어떤 정치 정당의 평등이념보다 실천적이다. ‘설국열차’를 제외하면 비행기만큼 계급이 뚜렷한 곳도 없다. 일반석은 비좁기도 하거니와 서비스도 비즈니스석에 비해 차이가 크다. 돈이 좌우하는 세계다. 오죽하면 등받이를 자유롭게 젖힐 수 있는 권리의 가격에 대한 연구까지 나왔겠는가(본보 ‘이코노미석 등받이’, 1월 11일자). 특별한 좌석을 없애고 공간을 평등하게 배분한 시도를 ‘자리의 민주화’라 한다면 억지일까.

‘고객은 왕’이라는 ‘고객 봉건주의’도 직원 우선주의에 의해 간단히 폐기됐다. 직원의 행복이 먼저라는 것. 그래야 고객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직원들에게는 ‘라면 상무’ 같은 갑질 고객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돼 있다. 자율은 켈러허 민주주의의 꽃이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노래를 부르거나 조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끼를 자유롭게 발산토록 허용할 뿐”임을 그는 강조했다(월스트리트 저널, 1월 5ㆍ6일자). 가장 자기답게 행동하도록 배려하는 것, 이게 민주주의다. 버스나 열차만큼 싸고 편리한 항공을 제공함으로써 모두가 이를 향유케 한 것까지 고려하면, 켈러허는 ‘하늘의 민주화’를 제대로 이룬 셈이다.

신화에는 늘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저가 의류업체 유니클로가 ‘패션의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클라인의 지적처럼 그 뒤에는 제3세계의 착취된 노동이 은폐돼 있다(‘나는 왜 패스트 패션에 열광했는가’ㆍ세종서적). 사우스웨스트에도 숨겨진 이면이 있을지 모른다. 실제 유머나 파티 문화가 맞지 않아 회사를 떠난 직원들도 있고, 임금수준도 경쟁사보다 낮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존중하고 해고 없는 회사를 지금껏 유지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진 예외임에 틀림없다. 켈러허가 지난 3일 타계했다. 삭막한 기업에서도 유쾌한 민주주의가 가능함을 보여 준 그가 벌써부터 그립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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