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활동하는 변호사 A씨는 지난해 재판 도중 황당한 일을 겪었다. 변론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재판부가 “이대로 가면 패소”라며 미리 결과를 예단했기 때문이다. 담당 판사는 당사자들에게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느냐”는 공격적 언사도 일삼았다. 알고 보니 이 판사는 다른 재판에서도 당사자에게 “그게 자랑이냐”, “지금 웃기냐”며 비아냥거린 사실이 드러났다.
B변호사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증인신문 도중 담당 판사는 “신문이 5분을 초과하면 녹음기를 꺼버리겠다”며 엄포를 놓았고 “어젯밤 잠을 못 자 피곤하니 불필요한 말은 삼가라”며 고압적 태도로 재판을 진행했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관들에게 낮고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일부 판사들은 사건 관계인에게 고압적 태도를 보이거나 막말을 일삼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년 법관평가에서 ‘문제 법관’으로 지적됐던 이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쁜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불량판사’를 걸러내고 재교육하는 사법부의 인적 관리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소속 회원들이 지난 한해 동안 수행했던 소송사건의 담당 판사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총 2,132명이 참여했으며, 5명 이상의 변호사에게 평가된 법관 중 △사건을 충실히 심리하고 △사건 당사자들과 변호인에게 충분한 입증기회를 제공한 21명을 우수법관으로 선정했다.
반면 10명 이상의 회원에게서 낮은 점수를 받은 ‘하위법관’ 5명(익명 처리)은 행동이나 언사, 재판 진행 등에서 갖가지 문제를 드러냈다. 하위법관으로 꼽힌 C판사에 대해 “당사자와 변호사들이 왕을 대하는 신하처럼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 다른 하위법관인 D판사는 소송당사자들과 대리인들에게 “네,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하거나,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구속영장을 미리 써왔는데, 한 번 더 기회를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며 구속을 빌미로 협박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왜 이렇게 더러운 사건들만 오냐”며 막말을 퍼부은 사례도 있다.
특히 이번에 하위법관으로 지목된 5명 중 3명은 과거에도 하위법관으로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2명은 과거 11차례에 평가에서 각각 6차례, 7차례 하위법관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나쁜 판사의 전형으로 꼽혔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하위법관으로 선정되면 본인에게도 통지가 가는데, 지적 사항을 고치지 않아 재선정되는 경우”라고 말했다.
사법부가 이런 외부 평가에 지나치게 둔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람들이 법관을 존중하는 건 그 개인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소수 법관들은 엘리트 의식에 젖어 왕처럼 떠받들어 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두 번, 세 번 지적받은 사람에 대해선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 주의를 주거나 모니터링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이런 것도 관리 못하면서 어떻게 사법부 신뢰를 회복한다고 하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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