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왕관과 우아한 드레스로 상징됐던 전(前) ‘국가대표 미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새로 선보일 [미코앤라이프]는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중인 미스코리아 당선자들의 근황과 동정을 소개합니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우먼파워’를 과시중인 이들의 건강한 삶을 통해, 진정한 ‘미’의 의미와 기준을 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미스코리아를 생각했는데 ‘미즈’코리아가 나타났다. 그것도 제법 듬직하게 자란 열 살배기 딸과 여덟 살배기 아들과 함께. “우리 아이들입니다. 픽업해서 오는 길이라 같이 왔는데, 괜찮죠?” 왕관과 상패를 들고 카퍼레이드를 하는 미스코리아 대신 두 아이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은 워킹맘의 모습이라니 뭔가 색달랐다. “여기 테라스 어떠세요? 계절마다 풍경은 다른데, 편한 분위기는 한결같아요.” 그렇게 변화무쌍 하면서도 한결같은 장은진(2000년 미스갤러리아) 녹원회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HI : 솔직히 평범한 삶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입학하셨나요?
장은진(이하 장) : 수석으로 입학한 예원학교를 1996년에 졸업하고, 일년후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학교장 추천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어요. 쉽게 말해 고등학교 과정을 건너 뛴 거죠. 97년 갑자기 특기자 수시 입학제도가 생기면서 가능했어요. 그렇다고 추천서 한 장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1~2차는 실기평가, 3차는 심층면접이었는데 총 세 번의 시험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답니다.
HI : 본인은 쑥스러워 얘기하지 않지만, 한 마디로 영재이셨군요. (웃음) 왜 무용가의 길을 가지 않았나요.
장 : 당선 이후 장점은 그 연령대에 해보지 못 할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해본 것이고, 단점은 집중해서 예술가의 한길로만 나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죠. 남들보다 학교를 일찍 들어갔던 만큼, 그때는 사회 생활도 일찍 시작하고 싶었어요. 때마침 학교 원장님께서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를 추천해주셨고, 제 뜻도 같았죠. 하지만 그에 따른 기대를 혼자 겪어내기가 힘들었어요. 또 네 살이나 많은 학교 동기들의 연륜과 느낌을 따라가기도 역부족이었어요. 원래 제가 생각했던 무용은 완성도 높은 테크닉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삶에 대한 깊이를 끊임없이 고찰하는 것이었죠.
HI : 솔직히 미스코리아 당선후 대학 생활이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장 : 그건 저 뿐만이 아닐 거예요. 사실 미스코리아 모두가 평범한 학생이잖아요. 어렸을 때는 갑자기 들이닥친 행운에 금방 적응하고 더 큰 꿈에 부풀게 됩니다. 그런데 1년간의 미스코리아 활동이 끝나면 현실은 또 다시 학생 중 한 명인거죠. 그래서 대회가 끝난 후에 잠시 성장이 멈춰버린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미스코리아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고 보듬어줄 수가 있나 봐요.
HI : 요즘 미스코리아들도 그런 과정을 겪을까요?
장 : 그럴지도요. 하지만 요즘 후배들은 참 지혜롭단 생각이 들어요. 대회에 나오는 계기도 우리때와는 달라요. 누군가의 권유가 아닌, 스스로 장래 희망과 경력을 고려해서 나오거든요. 또 타이틀이 생기면 오래 방황하지 않고, 다음 행보를 결정하더라고요.
HI : 어쩌면 대회 이후의 삶이 더 모험이 될지도 모르는데, 왜 매해 참가하는 여학생들이 줄지 않는 걸까요. 미스코리아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장 : 미스코리아는 평생 지지 않는 빛이 아닐까요. 선발됐던 당시의 화려한 빛이 이제는 은은한 빛으로 바뀌어가는 느낌입니다. 사회 활동을 하든,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그리고 며느리가 됐든 말이죠.
HI : 평생 지지 않는 빛은 뭔가를 비출 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장 : 맞습니다. 스스로 노력해 얻어내는 것과 타고 태어나는 것 중 미스코리아 선발은 어느 정도후자에 속해요. 하지만 어떠한 분야에서든 시간이 지날수록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하죠. 평생 미스코리아로 살아가려면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해요. 하늘이 주신 지혜와 아름다움을 가꾸고 또 나눠야만 한답니다.
HI : 미스코리아들의 봉사 활동이 활발한 이유로도 들립니다.
장 : 20대 초반에는 선배님들과 뭔가를 함께 한다는 자체가 좋았어요. 방송이나 해외 프로젝트를 할 때도 좋지만, 봉사 활동을 하고 나면 유독 돈독해지곤 했어요.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봉사 활동을 병행할 때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 사심 없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걸요.
HI : 회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녹원회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장 : 녹원회는 미스코리아 본선 당선자들의 친목모임으로 87년 시작된 사단법인 봉사단체입니다. 2013년 사회적 책임을 지고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는 사단법인으로, 2016년에는 기획재정부 등록 지정기부금 단체로 거듭났습니다. 미스코리아는 모두가 특별한 사람들이지만, 함께 있을 때 더 빛이 난다는 특성이 있어요. 그리고 미스코리아들만의 아우라가 모인 곳이 녹원회입니다.
HI : 녹원회의 새로운 활동 방향이 궁금합니다.
장 : 녹원회 회원들 중에는 워킹맘들이 많아요. 미스코리아 엄마들이 가진 재능과 공감능력, 모성애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교육과 영감을 주고 싶어요. 좀 더 구체적으론 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위한 드림센터 건립을 위해 힘써볼 계획입니다. 미스코리아들의 재능 기부로 꾸려질 바자회와 패션쇼,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서요. 미스코리아들 가운데는 음악 미술 무용 문학 뷰티 패션 요리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과거 수동적인 한국의 여성상을 깨고 무대에 올랐던 그 분들의 재능 환원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활발히 이뤄지면, 아이들도 더 많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리라 믿어요.
김수현(2006년 ‘미’ 미스한국일보) 녹원회 이사 crescent0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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