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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성폭력에... "집유" "집유" 물렁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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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성폭력에... "집유" "집유" 물렁한 법

입력
2019.01.15 18:17
수정
2019.01.16 10:2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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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작년 형 확정된 판례 분석]

5개 사건 중 1건만 실형… 4건은 집유 ‘솜방망이 처벌’

중학교 코치가 제자 강간 미수에도 “반성ㆍ초범” 형 감경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학교 운동부 코치로 일하던 A씨는 대회 기간 숙소로 사용하던 모텔방에 들어가 제자 B(13)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A씨는 운동 자세를 알려준다며 끌어안은 후 목에 신체접촉을 하는 등 총 4차례에 걸쳐 B씨를 강제추행을 한 혐의도 인정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반성하고 있는 데다 초범이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A씨를 석방했다.

체육계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로 알려진 성폭력 사건에 대한 폭로가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피해자가 용기를 내 신고를 하더라도 가해자가 최종적으로 실형을 선고 받는 사례가 많지 않다. 15일 한국일보가 체육계 지도자와 제자 사이에 벌어진 성폭력 사건 중 지난해 형이 확정된 5건의 판례를 분석한 결과, 최종적으로 실형이 선고된 것은 1건에 그쳤다. 나머지 4건 중 2건은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으며, 2건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형이 낮아졌다.

5건의 사례에는 체육계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선 지도자와 제자라는 권력 관계가 성폭력의 직ㆍ간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유일하게 실형이 확정된 사건에서 법원은 중고등학교 운동부 코치인 C씨가 피해자인 D(15)씨에게 4차례 성추행을 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국가대표에 추천했다’는 등의 말을 통해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C씨는 과거 제자였던 E(21)씨에게도 ‘코치 채용에 도움을 주고 해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력을 행사해 3차례 성추행을 한 혐의까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고, 2심에선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한 축구선수 출신 김가람 변호사는 “체육계에서 지도자는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로 마음만 먹으면 인맥 등을 활용해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선수를 그만둘 각오가 아니라면 어떤 지시도 거부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장기간에 걸쳐 여러 제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고등학교 운동부 코치인 F씨는 제자 3명을 상대로 8회에 걸쳐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고, 2심에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났다. 시청소속 운동부 감독인 G씨는 노래방에서 회식을 하다 선수들을 껴안는 등 성추행을 저지르고 폭행과 사기 혐의까지 받아 징역 8월과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김영미 변호사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이 저항을 제때 하지 못해 범죄횟수가 늘고 갈수록 대담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성년이 된 후에 성추행이었다는 점을 깨닫고 신고하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체육계 특유의 조직문화가 성폭력을 양산하는 배경이 되고 있는데도 법원은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원이 초범이나 피해자와의 합의 등을 감경 사유로 내세우는 것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5건의 체육계 성폭력 확정형 사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1건을 제외한 4건에서 초범과 합의가 감경 사유에 포함됐다. 김수진 여성변호사협회 부회장은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과거보다 엄격해지는 추세이지만 지속적으로 성폭력이 가해진 사건에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형이 이뤄지고 있다”며 “음주운전처럼 상징적인 사건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적용해 사회적인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 운동을 해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합의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은 현실도 법원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폐쇄적이고 불평등한 권력관계 등 체육계 특수성에 기반한 성폭력 문화를 감안하면 법원이 이를 고려해 좀 더 엄격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영미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미성년자인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재판을 계속하기 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해주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는 점까지 법원이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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