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완전한 북한 비핵화’라는 애초 목표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걱정이 국내에서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미국민의 안전이 대북 협상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11일 인터뷰 발언을 일부에서 자국 중심적인 타협 가능성으로 해석하면서다. 북한을 ‘핵 보유 선언국’으로 분류한 주일미군 동영상도 덩달아 부각되는 중이다. 이 영상물은 열흘 전쯤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를 제거하는 대신 운반수단(미사일)만 폐기해 핵이 자국 영토에 날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선에서 상황을 봉합할 수 있다는 가정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을 괴롭힌 지는 오래됐다. 이런 공포를 부추긴 이가 다른 나라 안보에 돈을 대고 자국 군인을 투입하는 건 오지랖 넓은 짓이라 여기는 지금 미국 대통령 트럼프다. 미국이 잘사는 게 먼저라는 그의 고립주의는 지금껏 세계 경찰 노릇으로 얻은 게 뭐냐는 미 유권자의 피로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정말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동북아시아에 추가되는 건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이 내팽개쳤다는 사실을 한ㆍ일이 깨닫는 순간 두 나라의 여론이 들끓고 핵 무장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른바 ‘핵 도미노’다. 패권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ㆍ일은 미국에 긴요한 존재다. 중국 역시 북한의 전통적 우방이지만 자국에 겨눠진 핵 위협을 용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알고 보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집단이 북한이다.
폼페이오 장관 언급이 법석을 떨어야 할 정도로 의미심장한지도 의문이다. “국민 안전”은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지) 장기화 국면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야당인 민주당과 맞서기 위해 사용 중인 대국민 수사(修辭)일 개연성이 있다. 14일 트럼프 대통령도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관련해 “미 국민을 안전하게 하는 일에 관한 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 강조가 장기적 관점의 정책 방향 수정이 아니라 단기적 정략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북미 협상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감축과 개성공단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 제재 면제를 맞바꾸는 ‘스몰 딜’이 거론되고 있다. 스몰 딜은 완전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교환이라는 북미 간 ‘빅 딜’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경유지 성격이 강하다. 오랫동안 협상이 교착하면서 소진되기 직전인 대화 동력을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물론 지나친 낙관은 위험하다. 하지만 대안 없는 비관과 불안 조장은 위기 타개에 걸림돌만 될 뿐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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