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핵심인 쿠릴 열도 4개 섬 문제와 관련, 러시아가 “일본이 ‘북방영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전후 외교의 총결산’을 기치로 평화조약 체결과 영토반환을 정치적 유산으로 남기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구상에 먹구름이 드리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협상을 벌였으나 극명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의 첫 발은 쿠릴 4개 섬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을 포함해 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일본이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이 쿠릴 4개 섬을 ‘북방영토’라고 부르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도 전달했다.
양국 간 평화조약 체결의 핵심인 시코탄(色丹), 하보마이(歯舞), 에토로후(擇捉), 구나시리(國後) 섬의 영유권과 관련, 2차 세계대전 승전국 러시아가 1945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이 섬들을 합법적으로 영토에 편입했다는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협상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국 사이에 커다란 불일치가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9일 쿠릴 4개 섬 반환을 전제로 한 아베 총리의 언론 인터뷰에 고쓰키 도요히사(上月豊久) 주러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정상 간 협상을 앞두고 기선 잡기에 나선 모양새다.
일본은 쿠릴 4개 섬의 일괄 반환을 주장했으나 지난해 말부터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의 우선 반환으로 선회했다. 1956년 양국 간 국교정상화 당시 소일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조약 체결 이후 4개 섬 중 시코탄과 하보마이를 일본에 인도한다”는 문구에 근거한 것이다. 우선 2개 섬 반환으로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겠다는 구상이지만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에 당황스러운 기색이다.
협상 초기부터 양국 간 이견만 부각되면서 아베 총리의 ‘전후 외교 총결산’에 대해,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 및 영토 반환을 내세워 7월 참의원 선거 압승을 노리고 있다. 참의원에서 개헌에 필요한 3분의2 의석을 유지, 개헌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다. 이에 6월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차 일본을 찾는 푸틴 대통령과의 협상을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결국 22일 예정된 러일 정상회담이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쿠릴 4개 섬 반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고, 푸틴 대통령도 “소일 공동선언에 두 섬의 주권을 일본에 넘겨준다고 적혀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어 일본의 구상대로 협상이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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