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용씨 폭로로 중고교 합숙문화 도마에… 학부모들 “범죄의 온상”
교육부 16년 전 “합숙소 폐쇄” 불구, 작년 서울 중고교 60곳 운영
수도권의 한 체육고등학교에서 합숙생활을 하는 학생 A군의 아침은 또래 친구들보다 이르다. 학기 중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침 훈련을 시작한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오전 8시 20분부터는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는다. 오후 2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오후 훈련, 오후 7시 30분부터 야간훈련,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밤 9시 20분, 늦어도 10시 20분 전까지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사실상 24시간 갇혀 훈련을 강요당하는 실정이다. 이는 여학생도 예외 없다.
미투에 동참한 전 여자 유도선수 신유용(24)씨의 폭로 등을 통해 국가대표 선수촌뿐 아니라 학교 합숙소 등의 합숙문화가 스포츠계 폭력과 성폭력의 온상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신씨의 폭로는 학원스포츠에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자행돼 왔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렇게 갇힌 공간에서 유년 시절 길들여져 온 피해자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공포의 트라우마를 쉽게 걷어내지 못한다. 신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유도부 코치에게 합숙소 등에서 몹쓸 짓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신씨는 해당 코치의 방 청소는 물론 속옷 빨래까지 해야 하는 ‘따까리’ 노릇도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천안초교 합숙소 화재로 9명의 어린 학생들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는 학교 운동선수 합숙소 폐쇄에 나섰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생활관 등 이름만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합숙소를 운영하는 서울 시내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 30곳이다. 2012년 제정된 학교체육진흥법 11조 3항에는 ‘학교의 장은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및 신체적ㆍ정서적 발달을 위해 학기 중 상시 합숙훈련이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학교의 장은 원거리에서 통학하는 학생선수를 위하여 기숙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2013년 개정된 11조 4항을 근거로 각 학교는 사실상의 합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을 초과하는 고등학교의 경우에 한해서만 합숙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학교와 지도자들은 합숙시스템의 장점을 강조한다. 많은 훈련 시간으로 실력을 늘릴 수 있고 선수들의 관리가 용이하다는 것. 수도권 한 체고의 기숙사관리 담당교사는 “선수들이 밖으로 다니다 보면 여러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다른 의견이다. 경기도 사립중학교를 다니는 축구선수의 학부모 B씨는 “말이 합숙소지 학교 교실을 개조해 만든 10평 남짓 되는 방에 무려 50명 가까이 지낸다”면서 “2층 침대가 부족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고, 한여름엔 땀냄새 때문에 학부모들이 방에 들어서지도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감독은 코치에게 학생관리를 떠맡기고, 코치는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오기 일쑤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외부의 비행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다는 학교측 주장에 대해 B씨는 “아이들 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지도자도 있고, 형들에게서 나쁜 것들을 더 많이 배워온다. 정작 범죄의 온상은 합숙소”라고 반박했다.
합숙 훈련 자체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폐쇄된 공간에서 위계에 의한 절대 복종은 결국 성폭력까지 양산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신유용씨의 미투 폭로가 나온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합숙소는 ‘학교 안의 섬’으로 운영되고 그 섬을 지배하는 코치와 감독은 절대적 권력자다. 학생들은 오로지 복종만 있을 뿐 성폭력이나 폭행 등 어떠한 인권유린에도 저항할 수 없다”며 운동선수 합숙소 폐지를 촉구했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ête@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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