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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순망치한(脣亡齒寒)

입력
2019.01.15 18:00
수정
2019.01.15 18: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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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헌공이 우나라의 우공에게 우나라를 통과해 괵나라를 공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우나라의 책사 궁지기가 길을 빌려 줘선 안 된다며 내세운 논리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궁지기는 “우와 괵은 서로 입술(순)과 이(치)의 관계”라며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린 법”이라고 강변했다. 진나라가 괵나라를 친 뒤 결국 우나라도 공격할 것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우공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궁지기의 예상대로 진나라는 괵나라를 정벌한 뒤 우나라까지 정복해 버렸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관계를 ‘순치’라고 표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중 환영 연회에서 “70년간 중국과 북한의 두 당, 두 나라, 두 인민은 순치 관계를 맺고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전진해 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중 친선의 아름다운 서사시를 계속 써 나가자”고 화답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5월 다롄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이자 순치 관계”라고 했다. 한때 한국을 더 챙기던 중국은 이렇게 다시 북한으로 돌아섰다.

□ 시 주석의 발언은 북한이 망하면 대륙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중국 지도부의 시각을 잘 보여 준다. 사실 마오쩌둥이 1950년 ‘항미원조’(抗美援朝ㆍ미국에 저항하고 북한을 지원한다)라는 명분으로 한국전쟁에 끼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신중국 성립’ 선포 1년도 안 된 상황에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용군’을 보낸 것은 대륙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파견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중국 입장에선 대륙이 아닌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르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 4차 북중 정상회담에선 한반도 정세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 연구ㆍ조정하는 문제까지 논의됐다. 시 주석이 북중 수교 70주년인 올해 방북하면 밀월은 더 끈끈해질 것이다. 중국의 개입이 노골화할 공산도 크다. 이런 판에 주중 대사는 공석이다. 한중 관계에 구멍이 난 셈이다. 순치 관계보다 더 공고해야 할 한미 관계는 이상 신호가 잡히는 형국이다. 한국이 한미일 순치 구도에서 제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곧 2차 북미 정상회담이다. 북중은 한몸으로 나서는데 한미가 서로 소 닭 보듯 하다 협상장에 앉는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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