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이하 한투)의 ‘발행어음 부당대출 의혹’을 두고 금융당국의 제재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회의(제재심의위원회)를 갖고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국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건 이번 거래 과정에 이용된 총수익스와프(TRS)에 대한 관행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지를 놓고 전문가들도 의견을 좁히지 못하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길어지는 당국 논의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24일 열리는 금융감독원의 3차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한투의 발행어음 부당대출 의혹을 다시 논의할 지 여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통상 결론이 나지 않은 안건은 다음 회의에 자동 상정되지만 최근 담당 국장이 바뀌는 등 인사 문제가 겹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15일 열리는 제재심 회의는 경징계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소회의”라며 “한투 징계 관련 논의를 할 대회의는 일러야 24일에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금감원은 작년 5월 한투 대상 종합검사를 벌여 한투가 발행어음 사업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기관경고와 유상호 부회장(당시 사장) 등에 대한 임원해임 권고, 일부 영업정지 등 중징계 방침을 사전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 제재안을 확정 짓기 위해 지난해 12월 20일과 지난 10일 두 차례 제재심의위원회를 가졌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금감원은 한투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개인(최태원 SK 회장)에게 대출한 것으로 본다. 자본시장법상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은 개인에게 대출할 수 없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한투는 SK그룹이 ㈜LG로부터 SK실트론을 인수하던 2017년 8월 SPC 키스아이비제16차를 설립했다. 키스아이비16차는 이후 SK실트론 지분 19.4%를 인수한 뒤, SK실트론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사모채권(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인수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키스아이비제16차는 최 회장과 TRS 계약을 맺었다. SK실트론 주식 가치가 하락할 경우 채권의 손실을 최 회장이 진다는 내용이다.
◇TRS가 뭐길래
TRS는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가 주식에서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 등을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거래를 말한다. 명목상 SK실트론 지분을 인수한 주주는 TRS를 매도한 키스아이비제16차지만 배당을 지급하거나 주식이 상장해서 이익이 날 경우에는 TRS를 사들인 최 회장이 고스란히 가져간다. 반대로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도 최 회장이 모두 감당한다. 최 회장은 일정 수준의 이자를 내는 대신 사실상 SK실트론 지분을 확보한 셈이다.
TRS 매매 자체는 그 동안 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터라, 당초 이 사안도 기껏해야 경징계 수준의 조치에 그칠 걸로 전망됐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한투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1,672억원)을 키스아이비제16차에 대출한 것을 문제로 삼았다. 형식적으로는 한투가 법인(키스아이비제16차)에 대출해 준 것이지만, 실제로는 목돈을 들이지 않고 SK실트론 지분을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최 회장에 대한 개인대출로 봐야 한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투는 키스아이비제16차가 발행한 사모채권 인수를 전제로 한 기업대출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관건은 초대형 투자은행(IB) 업무에 대해서도 과거 관행을 인정해 줄 것이냐 여부다. 1호 발행어음 사업자인 한투에 만약 ‘발행어음 영업정지’같은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초대형IB 사업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어서다. 금감원이 다음 회의에서 중징계를 결정할 경우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 정례회의를 거쳐 징계 수위가 최종 결정된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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