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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바르샤바 게토 봉기(1.18)

입력
2019.01.1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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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 무장 봉기가 1943년 1월 18일 일어났다. 사진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 en.wikipedia.org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 무장 봉기가 1943년 1월 18일 일어났다. 사진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 en.wikipedia.org

2차대전 나치 홀로코스트의 압도적 참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지만, 게토 유대인들의 독자적 반 나치 항전도 없지 않았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1941~43년 유대인 레지스탕스 그룹은 약 100여 개가 활동했다. 그들의 활약 중 가장 유명한 게 1943년 4월 19일 시작돼 5월 16일까지 이어진 ‘바르샤바 게토 봉기’다. 그리고 그 봉기에 앞서, 그 해 1월 18일 홀로코스트에 저항한 유대인 최초의 무장 투쟁이 바로 거기 뱌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났다.

나치의 폴란드 유대인 집단학살은 몇 달 간격으로 집중-휴지기를 반복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1942년 7~9월 사이 약 25만 명의 게토 유대인이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로 이송됐다. 그들의 운명이 여러 경로를 통해 게토로 전해졌고, 게토에 남은 노동력(전투력) 있는 젊은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저항조직이 꾸려졌다. 그게 폴란드어 약어로 ZOB(Zydowska Organizacja Bojowa), 영어식으로 말하면 JFO(Jew Fighting Organization)였다. 그들은 폴란드 레지스탕스 등으로부터 무기를 밀반입, 은밀히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듬해 1월 18일 유대인 이송작전이 재개됐다. 열차로 이동하는 대열 사이에 ZOB 대원들이 피스톨을 감춘 채 합류했다가 경비병을 사살하며 전투를 시작했고, 나머지 다수 유대인들은 다시 게토로 몸을 숨겼다. 그날 이송 작전은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수 있었고, 나치는 그 보복으로 사흘 뒤 1,000명을 공개 처형했다. 그리고 약 넉 달간 추가 이송이 없었다.

그 사이 게토에서는 무기를 보강하고 참호와 벙커를 짓고 바리케이드를 설치, 4월 나치와 본격적인 시가전을 벌였다. 약 한 달간의 공방은 나치가 게토 전역에 불을 질러 사실상 초토화함으로써 끝이 났다. 유대인 1만3,000여 명이 불에 타 죽거나 질식사했고, 5만6,000여 명이 체포돼 그 중 7,000여 명이 트리블링카로, 나머지는 강제노동 수용소로 이송됐다. ZOB의 리더로 1월 봉기를 이끈 24세의 모데차이 아니엘레비치(Mordecai Anielewicz)도 4월 봉기 중 숨졌다. 한 생존자는 훗날 자신들이 봉기한 동기를 두고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을 때와 장소를 우리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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