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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는 페어트래블러’… 지역과 환경에 기여하는 공정여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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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는 페어트래블러’… 지역과 환경에 기여하는 공정여행객

입력
2019.01.16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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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민씨가 2017년 부탄에서 함께 공정여행을 간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종민씨 제공
서종민씨가 2017년 부탄에서 함께 공정여행을 간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종민씨 제공

대학원생 서종민(36)씨는 남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즐긴다. 그의 여행에선 누구나 가는 유명 관광지,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르내리는 맛집이 우선 순위가 아니다.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여행이 최우선이다. 6년 전 첫 해외 여행지였던 일본 오사카도 그런 방식으로 다녀왔다. 아시아 각지에서 온 이주민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아시아의 평화와 교류를 위해 ‘아시아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공정여행 상품을 이용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다. 서씨는 “평소 가졌던 일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됐고, 그 이후에는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일본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저가형 여행상품에 비하면 꽤 큰 비용을 썼지만 여행을 하며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기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씨는 국내 여행도 공정여행으로 다녀왔다. 전남 구례군의 한 마을 주민들이 연 지역 축제에 참여하고 야생동물 보호 운동을 하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씨가 공정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여행이라는 소비 과정에서 생기는 부조리에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그는 ‘폐를 끼치지 않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지 가이드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현지 주민의 일상 생활에 피해를 주는 여행 대신 현지 주민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들과 교감할 수 있는 여행을 택한 것이다. 그는 “내가 어렵게 번 돈이 헛되게 쓰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말했다.

대기업 직장인 김하나(35)씨는 지난해 12월 남편, 두 딸과 함께 처음으로 공정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일본 히로시마. 유기동물 보호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여행사가 정한 일정에 따라 히로시마 시내에서 차로 두 시간 떨어져 있는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했다. 2017년 히로시마가 ‘유기동물 살처분 제로’를 실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 곳에서 김씨는 유기견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이들을 어떻게 새로운 가족과 만나게 해주는지, 유기견을 어떻게 구조견으로 훈련시키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지난해 여름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구라시키 지역을 찾아 당시 피해를 입었던 주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역 사회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됐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의 여행이 조금이나마 지역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여행 산업에서 공정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통계로 파악되지 않을 만큼 극히 일부이지만 서씨나 김씨처럼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서는 여행자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공정여행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여행이라는 소비 행위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보다 의미 있는 가치를 이끌어내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공정여행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공감만세’의 고두환 대표는 “과거에는 여러 여행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그쳤던 반면 최근에는 주도적으로 참여해 자신에게 맞는 일정을 짜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여행 일정에 윤리적 가치나 개인의 신념을 투영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처럼 소비행위에서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적극 표현하는 것을 지난해의 주요 소비 트렌드로 꼽기도 했다.

여행 산업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신(新)소비족에겐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 대표는 “공정여행을 선호하는 고객 가운데는 중산층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가 많고 사회 의식이나 정치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신소비족 여행자는 여행이라는 소비 행위가 주인공인 여행자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그치지 않고 여행지 주민의 삶과 지역 환경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 주목하며 자신의 소비가 지속 가능한 여행지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 고 대표는 “이전엔 관광산업의 목적이 여행자의 만족에만 집중됐지만 관광 문화가 성숙하면서 여행지 주민의 지속 가능한 삶과 환경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여행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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