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수사가 막바지로 향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본인을 정조준하는 메가톤급 의혹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방첩(적의 첩보활동을 막고 자국의 정보가 적에게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일) 수사’를 했다는 보도에 이어,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 내용을 사실상 ‘은폐’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것이다. 그 동안 트럼프 대통령 본인보다는 주변 인물들에 집중됐던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는 달리, 이번엔 그의 구체적 ‘행위’와 관련된 의혹이라는 점에서 심상치 않아 보인다.
◇NYT “FBI, 트럼프 본인 겨냥 ‘러시아 위해 일하는지’ 수사”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익명의 전직 사법당국 관계자들을 인용, FBI가 약 2년 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을 직접 수사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위해 비밀리에’ 일하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봤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FBI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을 수사선상에 올린 사실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NYT에 따르면 FBI 방첩요원들은 2017년 5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당시 FBI 국장을 해임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 수사에 착수했다. 소식통들은 “FBI는 (2016년) 대선 기간부터 트럼프 후보와 러시아 간 유착을 의심해 왔지만, 정치적 파장이 크고 민감한 사안을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본격적인 수사를 미뤘다”며 “그러나 코미 국장 해임 전후 대통령의 행동이 수사를 촉발했다”고 말했다.
FBI가 현직 대통령에 대해 다른 것도 아닌, 국가 안보와 밀접히 연관된 ‘방첩 수사’를 하도록 만든 건 ‘코미 해임 서한’과 ‘NBC방송 인터뷰’였다. 코미 전 국장을 경질하면서 작성한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의 이메일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내가 러시아 관련 수사선상에 없다고 세 번이나 말해 줘 감사하다”면서 비꼬는 문장을 굳이 추가했다. 또, NBC와의 인터뷰에선 “러시아 사건은 만들어낸 이야기다”라며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대한 FBI 수사를 거론했다. NYT는 “(코미 해임) 며칠 후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러시아 관리들을 접견했을 때, FBI 관계자들은 ‘대통령 수사 착수가 옳은 결정이었다’고 확신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방금 FBI 국장을 해임했다. 그는 미쳤다. 러시아 때문에 엄청난 압박을 받았지만 이제 다 끝났다”고 말했다.
당시 FBI의 수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위해’ 일했는지, 부지불식 간에 ‘모스크바의 영향하에’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NYT는 “해당 조사는 폭발적인 함의가 있다”면서 “FBI 방첩요원들은 대통령의 행동이 국가 안보에 잠재적인 위협을 구성하는지 고려해야만 했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현직 대통령을 ‘적국과 내통한 스파이’로 의심했었다는 뜻이다. 다만 같은 달 17일 뮬러 특검이 임명되면서 FBI는 수사 내용을 특검팀에 넘겼고 관련 수사를 더 진행하지 못했다. 뮬러 특검이 ‘트럼프 본인 수사’를 계속 이어갔는지는 불확실하다고 NYT는 덧붙였다.
◇WP “트럼프, 푸틴과의 정상회담 때 통역노트 압수까지”
이튿날인 12일 트럼프 대통령에겐 또 하나의 ‘대형 악재’가 터졌다. 워싱턴포스트(WP)가 전ㆍ현직 미 행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나눈 구체적 대화 내용을 은폐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특히 그는 지난 2년간 다섯 차례 열린 미러 정상회담 가운데 최소 한 차례의 경우, 통역사가 기록한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메모를 압수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WP는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통역사의 노트를 빼앗은 데 이어 ‘(푸틴 대통령과 회담에서) 일어난 일을 다른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한 고위 전직 관료는 “녹취록을 확보할 수 없어 좌절했다”고 WP에 말하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러 정상의 ‘일대일 대화’를 상세하게 기록한 원본은 비밀문서 형태로도 남지 않게 됐고, 이런 경우는 역대 어느 행정부에서도 발생하지 않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WP는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분노의 트윗’을 쏟아내며 FBI와 코미 전 국장, NYT 보도를 맹비난했다. 그는 트위터에 “와우, 망해가는 NYT를 보고 알았는데, 몹시 나쁜 이유로 대부분 FBI에서 해고되거나 물러나야 했던 부패한 전임 고위 관리들이 제임스 코미 해임 이후 아무 이유나 증거도 없이 나에 대해 수사를 개시했다니, 이건 완전한 추잡함(a total sleaze)”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FBI는 코미의 형편없는 리더십 때문에 완전한 혼란 상태에 있었다” “나는 오바마, 부시, 클린턴 전 대통령보다 러시아에 더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등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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