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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법원’이라는 성전의 위기

입력
2019.01.1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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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직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건 교회의 제단과 십자가 등이 상징하는 신(神)의 존재를 믿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성직자의 눈에는 마치 신자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기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자들은 성직자 개인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교회와 신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성직자들이 이를 오해해서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거나 그 신앙을 자신의 경제적 이익 또는 세속적 명예를 키우는 데 이용할 때, 그들이 일하는 성전(聖殿)은 영적 권위와 존엄을 잃는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팔고 사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엎으며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나무란 것은 당시 성직자들의 이런 행태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법관은 예복을 입고 일한다. 법관들은 중세풍의 가운을 입고 법대에서 재판을 주재한다. 법대 뒤 벽에는 법원의 상징물이 붙여져 있다. 지금의 법정은 교회와 유사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정에 들어갈 때 교회 등 성전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조심스러움을 경험한다. 그리고 법원의 권위를 존중한다는 뜻에서 법관에게 목례하고 경어체로 답한다. 그런데 법관이 이러한 사법적 권위에 대한 일반적 존중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할 때, 그리고 법원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스스로의 뜻을 관철하거나 세속적 명예를 확보하는 토대로 쓸 때, 법원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에 따라 재판하는 곳’이라는 정체성을 의심받게 된다.

최근 우리는 법원이 국민적 신뢰를 잃고 자신의 권위를 지탱할 힘이 약화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 거래,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 개입, 법원 내 비판세력 탄압, 판사 비위 축소 의혹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 모든 일들이 일선 법원이 아닌 대법원 주위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런 의혹이 제기된 것 자체만으로도 지난 대법원의 구성원들이 짊어질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재판 거래 및 개입과 관련된 의혹은 법관 스스로가 재판의 독립성을 훼손하였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법관윤리강령 제1조는 “법관은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나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 권력을 포함한 국가 권력은 자신의 힘 또는 주변의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사법 작용에 영향을 행사하려 할 수 있으나, 그와 같은 경우에도 법관은 이에 구애받거나 흔들리지 않고 용기 있게 법과 양심을 지켜야만 법관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뜻이다(법원행정처, ‘법관윤리’, 2011). 이렇듯 독립성의 유지가 법관의 본질적 임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난 대법원 시절 그 구성원들이 사법정책의 실현을 위해 정부에 다가가 재판 작용에 관해 협의하고 소송대리인 또는 사건당사자에게 조력한 것은 범죄의 성립 여부와 상관없이 중대한 법관윤리 위반 행위이다.

검찰은 위와 같은 의혹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관여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그리고 1월 11일 오전 양 전 대법원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하는 최초의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불명예를 경험했다. 검찰에 가기 전 그는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전 인생을 법원에서 근무한 사람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원에 들르고 싶었다.”고 답변하였다. 오랫동안 법관으로 일한 점에 비춰볼 때, 양 전 대법원장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법원의 사법적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고자,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소홀히 다룬 양 전 대법원장의 과오 및 그로 인한 법원의 시련을 생각하면, 지난 금요일 아침 그의 기자회견 장소는 적절치 않은 선택이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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