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을 지나 서서히 내리막에 접어들고 있는 글로벌 경기의 앞날을 두고, 세계 경제에 영향력이 큰 국제기구, 석학, 경영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전반적으로 밝지 않은 표정들 속에 ‘역대급 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지나친 우려는 기우’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특히 나홀로 호황을 지속했던 미국 경제를 둘러싼 견해차가 주목 받고 있다.
13일 외신과 금융권에 따르면 세계 경제 전반엔 당분간 희망보다는 ‘R의 공포(recessionㆍ경기침체)’가 지배할 거란 비관론이 다소 우세하다. 세계은행은 최근 ‘어두워지는 하늘(Darkening Skies)’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6월(3.0%)보다 0.1%포인트 낮춘 2.9%로 제시했다.
글로벌 경제 거물들 사이에선 특히 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경기마저 꺾인다면 세계 경제 전반이 더 가라앉을 상황이어서 우려는 가중되는 분위기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은 지난달 말 CNBC 인터뷰에서 “레버리지(부채로 자산매입에 나서는 투자전략)가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올해 미국 경제가 부진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이례적으로 물가가 뛰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도 “최근 어두운 금융시장 분위기가 1929년(대공황)과 비슷하다”며 “연준의 지난 수년간 금리인상엔 반응하지 않던 시장이 최근 인상에는 마치 위기가 닥친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심상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우려 배경엔 △미중 무역분쟁 △전반적인 기업 실적 악화 △사상 최대 글로벌 부채 △중국 경제지표 부진 등이 자리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경제 1, 2위인 중국과 미국의 무역 대립으로 세계 경제 심리가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칼럼 기고에서 “트럼프의 정책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며 “앞으로 금융위기와 경제 침체의 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IMF 등 주요 기관들도 일찌감치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잇따라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한 미 연준도 이런 경기 둔화 우려에 사실상 동의를 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아직 걱정할만한 단계는 아니라는 낙관론을 펼치는 거물들도 적지 않다. 성장세가 주춤하긴 하지만 최근의 글로벌 증시 동반폭락 등 시장 불안은 다소 지나친 반응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시장이 복잡한 현안을 둘러싼 단기 심리에 과잉반응 하며 자산을 매각하고 있지만 올해 미국의 성장률은 괜찮은(decent) 수준이 될 것”이라며 “소비자들은 좋은 상태에 있고 일자리 증가와 임금 상승이 이를 뒷받침 한다”고 분석했다.
지난주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도 낙관론이 쏟아졌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헨리 폴슨ㆍ티머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과의 공동인터뷰에서 “최근 증시 변동성은 과거(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위기 시그널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폴슨 전 장관 역시 “중국 경제 침체, 무역분쟁 등 여러 이슈로 변동성을 보이는 것뿐 놀라운 일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케빈 해셋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역시 총회에서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런 가능성은 제로(0)”라고 잘라 말했다.
국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분석보고서에서 올해 미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2.4%)보다 0.4%포인트 낮은 2%로 하향조정하면서도 “성장 둔화는 경제 연착륙에 필요한 과정일 뿐 여전히 경기침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우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보고서는 그 근거로 인플레이션 과열, 자산시장 거품처럼 경기침체 전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핵심 위험요인이 나타나지 않은 점을 들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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