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환자 몰리며 밤샘 대기
대신 줄서주는 업체까지 등장
8일 오후 11시 대구 수성구 A신경과의원. 자정을 불과 한 시간 앞두고 이곳을 찾은 박모(52‧경북 경산)씨는 1층 대기실에 환자 5명이 담요를 두른 채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료 접수용지에 이름을 쓰고 돌아서는 박씨에게 “용지 제출은 소용없다. 접수처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단골 환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박씨는 꼼짝없이 다음날 접수처가 열린 오전 6시30분까지 밤새워 기다려야 했다.
이처럼 진료 접수를 위해 매일 밤샘 대기하는 이 병원의 진풍경은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급기야 접수 대행업체까지 등장하는 진풍경이 발생하면서, 편법 줄서기 논란에 휩싸였다.
이 병원은 입소문을 타고 부산과 포항, 경주 등 전국 각지에서 환자가 모여 든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1층 대기실에 마련된 접수용지에 이름을 적고, 오전 6시30분부터 배부되는 진료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 이름을 적었더라도 자리를 비우면 자격을 박탈당한다.
반면 병원측이 하루에 진료를 보는 환자수는 평일 30명, 토요일에는 15명로 한정돼있다. 30명 중 10명만 당일 오전에 검사와 진료가 가능하고, 마지막 몇 명은 다음 날 오후에나 예약이 잡힌다. 결국 당일 진료까지 마치기 위해선 앞 번호가 필수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료 접수 대행업체까지 등장했다. 블로그에는 ‘동종업체 중 가장 많은 대리 접수량’, ‘희망 시간 100% 접수가능’, ‘1등 접수’ 등 접수 대행업체들의 홍보문구가 가득하다. 접수대행 수수료는 오전 진료가 10만~15만원, 오후 진료는 8만원이나 된다.
11일 오후 7시30분쯤 이 병원을 찾은 김모(71‧대구 동구)씨는 “대기 인원 중 10명만 오전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일찍 왔다”며 “30분이 채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20대 청년 6명이 들어와 대기명단에 이름을 적는 걸 보며 다음에는 조금 더 일찍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전 3시에 도착해 접수번호 19번을 받았다는 김모(55‧대구 달서구)씨는 “진료를 받기 위해 밤잠을 설친 환자 입장에서 보면 접수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병원이 이를 방치하는 것은 모종의 거래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병원측은 대리접수 상황을 알고 있지만 이 때문에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행법상 △환자의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대리처방 △동일질병 △장기간 동일처방 △환자거동불편 △주치의의 안정성 인정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처방 받을 수 있는 대리처방과 달리, 대리 접수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성구보건소 보건행정과 관계자는 “대리접수는 불법이 아니어서 단속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A신경과의원 관계자는 “접수 대행업체 모두 병원과는 관계없다”며 “다른 유명 신경과의 경우 예약을 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하지만 우리 병원에서는 누구든 기다리기만 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선착순 방식이 최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구=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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