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비공개 소환조사 이어갈 듯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된 아랫사람(당시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행위를 모두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한 뒤 검찰에 출두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사들과 마주앉은 자리에선 사실상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9시8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취재진의 질문을 모두 무시하고 검찰청사 15층에 꾸려진 조사실(1522호)로 향했다. 조사실에서 기다리던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의 수장 한동훈 3차장검사가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나 조사 취지와 개요 및 방식, 조사를 진행하는 검사 등에 대해 설명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된 조사는 박주성 특수1부 부부장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뜻에 따라 조사 과정은 영상 녹화됐다. 박 부부장은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개입 혐의 중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개입에 대해 캐물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민사소송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된 후 박근혜 청와대 및 외교부의 뜻대로 해당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차한성ㆍ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재판 절차에 개입하도록 지시를 내린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법률사무소 한모 변호사를 수 차례 만나 전원합의체 회부 등 재판 진행 상황이나 방향을 알려준 점도 확보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조사에서 구체적 사실관계를 맞닥뜨리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혐의를 사실상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물증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 후배 판사들로부터 받아낸 진술이 제시되면 “실무진에서 한 일이라 자신은 알지 못한다”라며 책임을 미뤘다고 한다.
강제징용 소송 관련 조사가 끝나고 휴식시간을 가진 후 이날 오후 4시 무렵부터는 판사 뒷조사(블랙리스트) 및 인사불이익 조치 등 조사가 이어졌다. 단성한 특수1부 부부장이 공격수로 나섰고 양 전 대법원장과 오전부터 함께한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등 변호인 2명은 검찰 공세에 맞섰다. 검찰은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 등을 작성해 법원행정처의 사법정책 방향이나 특정 재판 결과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포함시킨 뒤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데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개입한 정황을 다수 포착한 상황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앞선 조사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모른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가 40여개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만큼 추가 소환해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향후 소환 조사는 비공개로 이뤄질 전망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측과 일정을 조율한 뒤 이날 못다한 조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조사 받은 것 외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지위확인 소송 등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 입장을 내건 대한변호사협회 등 단체를 압박하거나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를 축소하는 등의 정황도 검찰이 파악한 상태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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