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노조, 양승태 친정방문 막아서… “법원에 영향력 행사 의도” 비난
헌정 사상 처음인 전직 대법원장의 검찰 조사는 시작 전부터 요란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대법원 청사에서 입장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하지만 꽃다발을 품에 안고 퇴임한 지 477일만에 다시 찾은 ‘친정집’ 문은 굳게 닫혔고, 그는 청사 담장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9시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입이 통제된 대법원 정문 안에선 미리 자리잡은 법원공무원 노조원들은 ‘사법적폐 청산’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양승태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소리를 지르는 법원 공무원들 쪽으로 몸을 돌려 몇 초간 응시하곤, 취재진 앞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포토라인 대신 대법원 정문 앞에 선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취재진 질문에는 “전 인생을 법원에서 근무한 사람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원 들렀다 가고 싶었다”라며 개인적 소회를 밝혔다.
대법원 앞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량을 이용해 검찰청사로 이동한 그는 서울중앙지검 앞 포토라인에서는 잠시도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조사실로 향했다. 대법원 앞의 기자회견에 5분이 소요된 반면, 검찰 포토라인을 통과하는 데는 단 10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형사 사건의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하면서 검찰 포토라인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 양 전 대법원장의 행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감안할 때 무조건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하지만 사법부의 수장 출신으로서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행보라는 비판이 우세했다. 여전히 ‘사법부의 상징적 존재’인 입장에서 ‘죄인’들이나 서는 검찰 포토라인에는 설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의도가 실제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법원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대법원을 배경으로 입장을 밝혔지만 되레 시대착오적 엘리트 의식의 발로라는 비판이 많기 때문이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머지않아 재판을 받게 될 법원을 옛 직장이라고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이 사태를 감당해야 할 법관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라고 개탄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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