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선물가게에 진출 성공
“품질제일주의 공장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인호(45)정화실업(주) 대표는 업계에서 ‘현장형 CEO’로 유명하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부친과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아버지가 장인처럼 제품의 질을 높이는데 몰두했다면 이 대표는 여기에 발로 뛰는 마케팅 경영 전략가로서의 프로필을 더했다.
이 대표의 특기가 발휘된 예로 코레일 명품마루 매장의 실적을 들 수 있다. 4년 전 매장을 열었을 때 첫째 달 매출이 50만 원이었다. 이 대표가 뛰어들어 6개월 만에 월 5,00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동안 현장에서 갈고 닦은 노하우를 모두 동원해 얻은 결과였다.
“2000년부터 10년 동안 겨울마다 미국에 있는 마켓에 들어가서 제품을 직접 판매했습니다. 미국에는 세계의 목도리가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여간해선 눈길을 끌기가 힘들어요. 전쟁터 같은 곳에서 물건을 팔면서 품목 다양화를 비롯해 계절과 날씨를 고려해 전시 제품과 색상을 알맞게 배치하는 법, 가장 적절한 할인 폭과 타이밍 등을 연구하고 실험해 저의 노하우로 만들었죠. 2012년에는 캐시미어터치 목도리로 미국에서 10초당 1장, 미국 인구 100명당 1장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어요.”
현장에서 시장의 변화를 피부로 체감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백화점, 대형 마트 할 것 없이 오프라인 시장이 내리막길로 치닫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온라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대행사에 맡겼던 온라인 판매 업무를 3년 전부터 회사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판촉물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유통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무실에 앉아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죠.”
오프라인 시장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발길이 뜸해진 길거리 상점과 백화점을 떠나 소비자를 찾아간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커피숍, 꽃가게 한켠에 설치할 수 있는 소형 판매대(Shop in shop)를 기획했다.
해외 시장도 활발하게 공략하고 있다. 영국이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5년 전 영국에 들어갔을 땐, 중국 제품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이었다. 정화실업은 첫 시도에서 일주일 만에 4,500장을 판매했다. 영국인들이 중국산처럼 표면이 매끈한 것보다는 자연스럽고 투박한 느낌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간파해 제품에 적용시킨 덕분이었다. 원사와 염료, 디자인, 면의 질감 모두를 현지인 기호에 최적화한 결과, 첫해 3만 달러를 시작으로 지난해 50만 달러 수출에 성공했다.
“영국 시장에 뛰어들면서 오히려 선진국 시장이 더 쉽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성장 국가들은 저가 제품에만 반응을 합니다. 품질과 디자인, 현지인의 성향만 잘 파악하면 프랑스 등 서유럽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화실업의 주력 디자인은 타탄체크다. 2013년, 우연히 체크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의 체크 박물관을 둘러본 후 승부욕이 발동했다. 타탄체크를 한국에 맞게 적용하자는 생각이었다.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체크는 정화실업’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2016년부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선물가게들에서도 정화실업의 타탄체크 목도리를 판매하고 있다.
“제대한 다음 날, 아버지가 ‘오늘 일 없제? 공장에 와서 짐이나 옮겨라’고 해서 첫 출근을 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하면 할수록 너무 재미있습니다. 정화실업 목도리가 선진국에서도 명품 중의 명품으로 손꼽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문의 명예를 걸고 힘차게 달리겠습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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