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값이 너무 비싸요. 경제적 이유로 보청기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음향 전문기업 비에스엘은 독자적인 기술로 보청기를 생산하고 있는 국내 강소기업이다. 초음파 진단기로 유명한 메디슨 출신의 박천정(55) 대표가 지난 2010년 설립해 2012년부터 보청기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포낙, 스타키, 지멘스 등 보청기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한 국내 유통망을 국내 중소기업이 뚫기는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성능은 뒤지지 않았지만 글로벌 업체들이 수십 년간 공고히 쌓아온 유통망과 경쟁하며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며 “그래서 의료기기인 보청기 대신 청력 보조기를 생산해 시장에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3년여의 연구 끝에 지난해 11월 보청기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전화를 받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청력 보조기(청음장치) ‘베토솔(사진)’을 개발해 시중에 내놨다.
그는 “스마트폰에 연결해 전화를 받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에 소리를 증폭해 주는 보청기 기능이 추가된 것”이라며 “보청기 기능을 가진 청음장치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베토솔의 가장 큰 장점은 시중 보청기보다 최대 90%이상 저렴한 가격이다. 그는 “중저가 보청기라도 시중에서 최소 200만원은 줘야 구입할 수 있는데 베토솔은 20만원대 가격으로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에 거는 넥밴드(목걸이) 형태로, 보청기 착용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쓰기에도 유용하다. 박 대표는 “귀에 삽입하는 방식의 보청기는 보청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적합하다”며 “이러한 단점 때문에 크기가 작은 보청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 눈이 잘 안 보이는 어르신들이 쓰기 불편하고, 분실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가격이 싸고 디자인도 우수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의 성능이다. 박 대표는 베토솔을 개발한 비에스엘의 주요 연구진이 초음파 진단기 분야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메디슨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초음파 진단기는 소리를 영상신호로 변환하는 기술이 핵심으로, 보청기 생산 기술과도 연관돼 있다.
박 대표는 “1,000만원이 넘는 고성능 보청기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200만원대 중저가 보청기과 비교할 때 성능이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제품 출시 전 청력이 약한 노인층을 대상으로 테스트해본 결과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베토솔의 판매망 확대를 위해 ‘의료기기’라는 타이틀도 포기했다. 보청기는 ‘의료기기 판매 허가’를 받은 곳에서만 판매할 수 있어 유통망이 지나치게 좁아지는 단점이 있다. 박 대표는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이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청력 보조기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현재 유명 전자제품 대형 대리점과 약국체인 등에 입점했고, 향후 판매망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베토솔의 시장 반응을 살펴본 뒤 보청기 대중화를 위한 제품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아울러 일본 등 해외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는 “13조원 규모로 파악되는 전 세계 보청기 시장은 가격만 수백만 원대에 달하는 비싼 보청기를 생산하는 글로벌 메이저 6개사가 장악하고 있다”며 “경제적 문제 때문에 청력 보조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관련 제품을 추가로 개발해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에스엘이 청력 보조기 베토솔을 주력 제품으로 내놓고 있지만 의료기기인 보청기 생산과 판매를 아예 포기한 건 아니다. 베토솔처럼 스마트폰에 연결해 전화를 받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부가 기능은 없지만, 목소리를 키우고 주변 소음을 줄여주는 ‘소음 감소’ 기능을 가진 고급형 보청기도 지속적으로 개발해 판매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국내 순수 기술로 생산한 보청기와 청음기로 소수 글로벌 기업이 장악한 보청기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며 “보청기가 고가의 의료기기가 아니라는 점을 시장에서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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