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으로 부동산을 증여하겠다고 약속한 다음, 그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대출한 행위는 배임죄로 보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배임 혐의로 기소된 민모(68)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수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2003년 민씨는 사실혼 관계인 이모씨에게 자기 소유 목장의 지분 절반을 증여한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표시했다. 민씨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고 있다가, 2011년 4월 해당 목장을 담보로 은행에서 4,000만원을 빌렸다. 구두로 하는 증여계약은 재산을 주는 사람(증여자)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지만, 서면 증여 계약은 함부로 해제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민씨는 증여를 받는 사람(수증자)인 이씨에게 2,000만원 정도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ㆍ2심은 “증여계약에 따라 민씨가 소유권 이전 의무를 부담하게 됐더라도 이는 민씨의 ‘자기 사무’에 해당할 뿐 ‘타인의 사무(다른 사람의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해야만 성립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과 판단을 달리 했다. 대법원은 “부동산의 매매 계약에서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가지는 것처럼 증여 계약에서도 이런 원리가 적용된다”라며 “재산을 증여하는 사람이 재산 이익을 보호ㆍ관리할 신임관계에 있게 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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