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원이 일제 강점기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자산압류 신청을 승인하자 일본 정부가 9일 우리 측에 ‘외교적 협의’를 공개 요청했다. 이는 한일청구권협정 상 분쟁해결 절차로 일본 측 의도와 협의의 효용성 등이 불투명해 정부가 대응책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오후 이수훈 주일 대사를 불러들여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 뒤 담화를 발표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담화에서 일본 정부는 “9일 오후 일본기업에 재산 압류 신청이 승인됐다는 취지의 통지가 이뤄진 (사실이) 확인됐다”며 “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의 청구권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해 이수훈 한국대사를 불러 협정에 따른 협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전날인 8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측 대리인들이 신청한 신일철주금 한국 자산 압류 신청을 승인하자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에는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한일 간에 지금까지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외교적 협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정부는 앞서 2011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이 외교적 협의를 일본에 요청했으나 일본은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에 응하지 않았다.
협의 요청을 수용할지에 대해 외교부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외에도 한일 간 대립하는 현안이 많아 보다 폭넓은 논의 채널이 필요하다는 점, 이미 청구권협정 지위에 관한 양국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외교적 협의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등이 고려되고 있는 듯하다. 일본이 결국 강제징용 판결 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기 위한 명분을 쌓으려 외교적 협의를 검토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청구권협정에는 외교적 협의에서도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양국이 합의하는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해법을 찾게 돼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재위는 해법의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