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제도 정비에 나섰다. 국회에서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자는 ‘임세원법’이 쏟아지고 있는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데 여야의 이견이 없지만 세부 해법은 시각 차가 있어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의료현장 내 폭행을 방지하기 위한 관련 법안은 현재까지 총 12건이 계류돼 있다. 지난달 31일 임 교수 사건 이후에만 5건이 발의됐다. 개정안들은 의료인 폭행·협박 시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으로만 처벌(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하거나 안전한 진료실을 만들기 위해 △진료실 비상벨ㆍ비상문 설치 의무화 및 예산 지원(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 △안전관리 전담인력 배치 의무화(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제2의 임세원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데 여야는 모두 공감하지만, 의료인 폭행 시 처벌 강화에 대해선 입장차가 있다. 이날 열린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응급실 뿐 아니라) 일반진료 시 발생하는 폭행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으나,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처벌만 강화하면 정신질환자 사후관리 등 국가가 할 일을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의료기관에 비상벨ㆍ비상구ㆍ보안요원 배치 등을 의무화하는 방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부의 우려가 나온다. 비상벨 설치 등의 안전 설비는 개별 의료기관이 갖춰야 하는데 중소병원, 의원 등은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안전 예방조치를 의료기관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의료기관안전관리기금(가칭)을 마련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를 정비해야 하는데 이 역시 해법에 시각차가 있다. 정부ㆍ여당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외래치료명령제를 강화해 국가의 관리를 강제하겠다는 구상이다. 관련 법도 4건 발의돼 있다. 그러나 야당과 의료계 일각에선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는 사법 판단에 따라 강제입원하는 ‘사법입원제도’ 도입 등 보다 강력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법입원제도는 비자의(非自意) 입원을 막도록 한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취지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국회 복지위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의료진 안전을 강화하는 시스템 마련과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 정비를 동시에 논의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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