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뇌부가 2008년 미국산 소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강요하고 “무죄가 나와도 좋으니 기소하라”는 외압을 행사했다는 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과거사위는 정부정책을 비판한 언론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찰권을 남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감갑배)는 9일 ‘PD수첩 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를발표하며 “당시 대검찰청과 법무부가 정치적 고려 아래 수사를 강제하려고 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그러면서 정치적 중립 준수 및 특정사건에 대한 대검의 수사지휘 축소 등을 검찰에 권고했다. 검찰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PD수첩이 재판에서 대부분 무죄가 났고 공소시효마저 지났기 때문에 재수사는 의미가 없다는 게 과거사위의 판단이다.
PD수첩 사건은 정부(농림수산식품부)가 2008년 4월 광우병 논란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건이다. 처음 사건을 담당한 임수빈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는 “일부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의 자유 등에 비춰 기소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 지휘부는 수사팀을 교체하면서까지 제작진을 기소했고, 이 과정에서 윗선의 강제수사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과거사위 조사에서 이 같은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최초로 수사를 착수하는 과정부터 위법이 확인됐다. 과거사위는 “농림부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수사 의뢰한 사건임에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은 수사팀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수사 목적으로 요구했다”며 “이는 검찰 수사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사과정에서도 부당한 지시가 계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1차)이 명예훼손죄 성립이 어렵다는 의견을 제출하자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였던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임수빈 전 부장검사를 따로 불러 “무죄가 나와도 아무 문제 없는데, 잘 알면서 왜 그러냐”며 사실상 기소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검과 법무부 차원에서 수사팀에 강제수사를 요구한 사실도 확인됐다. 특히 2008년 11월 작성된 대검 형사부 문건에는 강제수사 필요성을 검토하면서 형사소송법상 필요성이 아니라 ‘정국 안정’, ‘야권 반발’, ‘사회 분위기나 여론’ 등을 고려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사의뢰가 농림부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사전 조율됐다는 의혹에 대해 과거사위는 “합리적인 의심은 들지만 조사상 한계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이 ‘당시 수사기록이 보존돼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서도 과거사위는 “검찰보존사무규칙 위반 행위”라고 지적하는 데 그쳤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 명동성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최교일 전 1차장검사 등 당시 수사 지휘계통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책임을 묻지 않았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당시 수뇌부 행위를 범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데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수사의뢰 등의 권고는 포함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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