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서귀포

지난 4일 오후 1시40분쯤 제주 서귀포시 원도심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로터리 버스정류장. 일반 버스 2~3대가 지나간 후 외부는 제주 바다 빛깔을 닮은 하늘색에, 지붕은 분홍색인 눈에 확 띄는 버스 한 대가 정류장으로 다가 왔다. 멈춰 선 버스 좌우에는 파란 바다 속에서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앞면과 옆면에는 ‘시티투어(CITY TOUR)’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시티투어버스에 올라탔다. 다채로운 외부 모습과 달리 내부는 일반 버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영방식도 같았다. 전기버스 시티투어버스 3대가 원도심 내 정해진 노선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요금은 일반 공영버스와 같은 1,200원(성인 현금 기준)이다. 일반 버스들과 마찬가지로 고유번호(880번)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토 최남단 청정 관광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일반 버스가 아닌 친환경 전기버스를 투입해 시티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 운행노선이 원도심 내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가 시티투어버스를 노선버스 형태로 운영하는 이유는 서귀포 원도심이 크지 않은 데다 주요 관광지들도 밀집되어 있어 도심투어와 함께 원도심 교통체증도 해소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외로운’ 외돌개에서 올레를 만나다
이날도 시티투어버스 내부에는 관광객보다는 서귀포향토 오일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는 노인들이 더 많이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제주 토박이들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순도 100%의 제주사투리로 시끌벅적한 버스 안은 마치 외국의 시골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정류장마다 노인들이 하나 둘씩 내리고, 중앙로터리에서 출발한 지 10여 분만에 시티투어버스는 운행 노선 중 가장 외곽에 위치한 외돌개 정류장에 도착했다. 외돌개는 바다 한복판에 홀로 솟아 있는 모습이 고독해 보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150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바위섬인 외돌개 꼭대기에는 신기하게도 작은 소나무들이 모진 바닷바람 속에서도 잘 자라고 있었다. 외돌개는 또 올레길 코스 중에서도 풍광이 뛰어나 올레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 7코스에 포함돼 있다. 멋진 바다 경치를 보면 해안길을 따라 걸을 수 있어 ‘힐링’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올레길에 관심이 많다면 외돌개를 가기 전 올레 7코스의 시작점이자 올레꾼들의 베이스캠프인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방문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중앙로터리에서 세 번째 정류장인 옛 중앙파출소에서 내려 2~3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 2016년 7월에 문을 연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는 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센터에는 도보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시설이 갖춰졌다. 국내외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쉬고 교류할 수 있는 숙소 '올레 스테이', 청년 셰프들이 제주식재료로 만든 맛있는 밥상을 선보이는 청년올레식당과 카페, 제주올레 펍(Pub) 등이 운영되고 있다. 또 제주올레 기념품인 간세인형을 직접 만들며 체험할 수 있는 간세공방과 제주 올레길을 운영ㆍ홍보하는 ㈔제주올레 사무국이 들어서 있는 등 센터는 올레꾼들의 쉼터이자, 본거지다.
![[저작권 한국일보]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섶섬과 서귀포 앞바다 전경. 김영헌 기자.](http://newsimg.hankookilbo.com/2019/01/09/201901091346771384_21.jpg)
△서귀포 원도심, 이중섭거리를 느릿느릿 걷다
바다 풍경을 뒤로한 채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서귀포 시티투어의 백미인 이중섭거리다. 이중섭 거리는 4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화가 이중섭(1916~1956)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고, 가장 서귀포다운 원도심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중섭의 다양한 원화와 자료를 전시한 이중섭미술관과 그가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1년간 피난생활을 했던 작은 초가가 보존돼 있다. 이중섭미술관 방문 팁 중 하나는 미술관 옥상에 오르는 것. 이 곳에서는 이중섭의 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 등장한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를 70여년 전 그의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다. 이중섭미술관을 나온 후에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서로 얽혀있는 골목투어가 기다린다. 이중섭의 작품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은 공방들과 각종 수제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소품 숍, 커피숍, 맛집 등이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섞여 운치를 더해 준다. 이중섭거리는 주말이 되면 아트마켓으로도 변신한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이중섭 거리 일대는 차없는 거리로 운영되고,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들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기념품과 수공예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초등학생 딸과 제주로 여행 온 이은영(43ㆍ서울)씨는 “운전을 잘 하지 못해 렌터카 대신 시티투어버스를 골랐는데 요금도 저렴하고 관광지들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등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며 “서귀포 원도심이 별로 크지 않아 이곳저곳 구경하다 시간만 잘 맞춰 정류장에 가면 시티투어버스를 쉽게 탈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관광지 등에 대한 자세한 안내방송이 없는 점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 밤늦도록 즐기는 서귀포의 낭만투어
이중섭거리에서 서귀포항을 지나 버스로 5분여를 이동하니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천지연폭포에 도착했다. 천지연폭포는 ‘하늘과 땅이 만나서 이룬 연못’이라는 뜻이다. 22m 높이의 기암절벽에서 떨어지는 웅장한 폭포수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또 폭포 아래 수심 20m에 이르는 넓은 못에는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된 귀한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있고, 폭포 주변 계곡에는 담팔수 등 희귀식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천지연폭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새연교는 서귀포항과 새섬을 연결하는 다리로, 서귀포항의 랜드마크다. 최근 산책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새섬은 새연교가 건설되기 이전까지는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새연교 준공 이후 새섬에는 공원이 조성돼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천지연폭포와 새연교, 새섬을 잇는 코스는 야간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여름이면 천지연폭포 일대는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폭포 역시 화려한 조명과 만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새연교 뒤로 지는 일몰도 한 번 보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새섬 외곽을 따라 조성된 1.1㎞ 길이의 산책로는 야간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5월부터 9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새연교 공연장에서 진행되는 야간콘서트도 즐길 거리 중 하나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풍성한 먹거리투어
서귀포 시티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먹거리투어다. 서귀포항부터 칠십리음식특화거리까지 이어지는 도로 곳곳에는 청정 제주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회와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횟집들이 줄지어 있다. 또한 칠십리음식특화거리 앞에 위치한 자구리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 전망은 덤이다. 전망대 정면에는 섶섬이, 오른쪽으로는 서귀포항과 문섬을 볼 수 있다. 해가 지면 각종 조명이 밝혀지면서 밤의 낭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서귀포매일올레시장과 아랑조을거리도 먹거리투어 중 꼭 들려야 할 곳으로, 도로 하나를 가운데 두고 인접해 있다. 제주은행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위치한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는 특이한 주전부리부터 흑돼지, 횟감 등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대표 먹거리로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꽁치김밥을 비롯해 흑돼지꼬치, 마농(마늘)치킨, 우도땅콩만두, 한라봉빵, 흑설탕 국화빵, 대게고로케, 딱새우회 등등. 제주어로 ‘알면 좋은 거리’라는 뜻인 아랑조을거리는 도민들이 즐겨 찾는 맛집들이 몰려 있는 서귀포의 대표적인 먹자골목이다. 흑돼지와 말고기, 갈치조림 등 제주향토음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다.
서귀포시티투어버스의 출발지이자 종점인 서귀포향토오일장도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하다. 끝자리가 4일과 9일마다 장이 서는 서귀포향토오일시장에는 500개가 넘는 점포들이 운영된다. 판매 품목도 제주산 농수산물을 비롯해 약초, 건어물, 잡화 등 다양하다. 또 시장 내에는 보말칼국수, 순대국밥, 고기국수 등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맛 볼 수 있고, 추억의 음악다방도 운영 중이다.

서귀포=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