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 쿵, 덜컹 쿵.’
배가 앞뒤로 흔들리며 얼음 깨는 소리가 들렸다. 멀미에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창밖을 내다보니 주변은 온통 하얀 얼음으로 가득했다. 그 위로 움직이는 검은 점이 보였다. 아델리펭귄이다. 그렇게 15일간의 항해 끝에 장보고 기지에 도착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남반구는 여름이다. 남극 역시 이때가 가장 따뜻하다. 장보고 기지의 지난달 평균 기온은 영하 1.8도, 최고 기온은 영상 3.7도였다. 남극 전역에 약 450만쌍이 분포하는 아델리펭귄은 이 시기에 맞추어 새끼를 키운다. 과학자들도 이 때에 맞추어 조사를 진행한다. 남극 로스해 인근 번식지에서 조사를 시작했는데, 지난달 10일부터 몇몇 둥지에서 펭귄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났다. 이때부터 펭귄 부모는 바빠진다. 암수가 번갈아 바다로 나가 먹이를 구해와 새끼를 먹인다.
펭귄은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먹이를 구할까? 답을 구하기 위해 펭귄 몸에 위성항법장치(GPS) 장비를 부착했다. 그리고 근처에 텐트를 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번 바다에 다녀오는데 걸린 시간은 평균 2, 3일, 가장 늦게 돌아온 녀석은 5일째 나타났다. GPS신호를 컴퓨터에서 확인해본 결과 보통 30~50㎞ 거리의 먼 바다로 나가 헤엄쳤다. 가장 멀리는 최대 120㎞ 떨어진 해역까지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자세한 분석은 하지 못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거리까지 헤엄쳐 먹이를 찾는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번식지는 바다와는 꽤 거리가 있어서 약 5㎞ 가량의 바다얼음을 지나야 한다. 왕복 10㎞를 걷거나 혹은 배를 깔고 썰매 타듯 발을 끌었다. 약 시속 4㎞ 속도로 이동했는데 이는 사람 성인이 걸을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아델리펭귄의 몸길이가 약 70㎝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속도다. 얼음 위를 걷기 때문에 아델리펭귄이 인간과 나란히 걸으면 더 빨리 이동한다. 실제 아델리펭귄과 나란히 해빙을 걸어본 결과 필자가 더 느렸다.
바다를 다녀온 펭귄은 배가 불룩 나와 있다. 바다로 갔다 온 후 몸무게는 평균 700g 가량 증가했다. 어떤 개체는 3.1㎏에서 4.1㎏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배를 불린 펭귄은 둥지에서 새끼에게 조금씩 먹이를 뱉어준다. 가끔 새끼가 제대로 받아먹지 못해 흘린 조각들이 있어서 들여다보니 대부분 크릴(Krill)이라 불리는 새우와 비슷하게 생긴 갑각류였다. 남극크릴과 크리스탈크릴, 그 외에도 단각류와 등각류도 눈에 띄었다.
부화 후 약 4주가 지난 1월 6일 번식지를 찾았을 땐 이미 펭귄이 많이 커서 둥지를 떠나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곧 잿빛 솜털이 빠지면서 부모처럼 제대로 된 방수깃털이 나올 것이고, 깃갈이가 마무리되는 2월 초엔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연구팀도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겠지. 남극의 여름도 이제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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