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김용덕 전 대법관, 재판연구관에 지시 문건 확보
양승태 징용소송 지휘 확인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의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전 대법관이 기존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논리를 개발하라고 담당 재판연구관에게 지시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김 전 대법관을 거쳐 실무 판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원고인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기존 대법원 판결을 파기할 논리를 만들라는 김 전 대법관의 지시사항이 담긴 대법원 내부문건을 확보했다.
2014년 12월 작성된 이 문건에 따르면 김 전 대법관은 당시 대법원 민사 총괄 재판연구관이던 황모 부장판사에게 “기존 판결이 잘못이었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회사를 상대로 직접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대법원이 2012년 5월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 개인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내용이 잘못됐다고 선언하지 않으면서도 피고인 전범기업에 배상책임을 물리지 않을 수 있는 논리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대법관은 또 황 부장판사에게 “소멸시효를 어떻게 정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 2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거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던 탓에 소멸시효 문제는 당시 청와대의 주요 관심사였다.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이 2013년 12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과 공관 회동을 한 직후 법원행정처는 소멸시효가 끝날 때까지 소송을 지연시켜 추가소송을 봉쇄하는 시나리오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관이 김 전 대법관과 재판 실무 담당자를 통해 재판에 개입을 했다고 결론 짓고 11일 피의자로 소환해 사실관계를 추궁할 방침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소환조사에 앞서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 등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재소환하고, 권순일ㆍ이동원ㆍ노정희 대법관 등 현직 대법관 3명에 대한 서면조사를 진행하는 등 준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조사를 받았던 서울중앙지검 15층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