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마약과의 전쟁’ 이후 수감자 급증하지만 시설 부족
교도관 인력도 불충분 “통제 불가”… 갱단 출신 수감자들에게 감독 맡겨
필리핀 감옥이 갈수록 늘어나는 수감자들로 사실상 ‘슬럼화’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 이후 수감자는 급증하는데,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나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 탓에 교도소 생활 여건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소자들을 통제ㆍ관리할 교도관 인력마저 충분치 않아, 구금 상태에 있는 갱단이 당국 묵인 하에 ‘감옥 내 통치세력’으로 올라서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날 NYT가 전한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마닐라시티 교도소’ 현지 르포 기사에 따르면 이곳의 ‘인구 과밀’ 상태와 그에 따른 열악한 수용 여건은 세계 최악 수준이다. 교도소 내 ‘5동’의 경우 170명이 정원인데 수용자는 무려 518명에 달한다. 찜통 더위 속에서 땀이 마를 리가 없고, 그만큼 악취도 진동할 수밖에 없다. 교도관도 수감자 528명당 한 명꼴로, 정부 기준(7명당 한 명)에 훨씬 못 미친다.
수감자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잠자리 확보’다. 절대적인 공간 부족으로 진흙투성이의 웅덩이를 씻어 내고, 타일 바닥에 골판지를 펴거나, 창문도 없는 화장실에서 수면을 취하는 일이 허다하다. NYT는 “합판 벽과 커튼이 있고 두 명 정도가 함께 쓸 수 있는 즉석 침실, 이른바 ‘쿠볼’로 불리는 공간을 수용자들끼리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교도소 인구 폭증에는 ‘마약과의 전쟁’ 탓도 있지만, 체포ㆍ구속 이후부터 확정 판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현지 사법 체계의 구조적 문제도 작용했다. 실제 대부분 재소자들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용자 신분이다. 미국 사우스일리노이대 교수인 레이문드 나락은 “필리핀 사법제도는 비효율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에도 불구하고 판사와 변호사가 천천히 재판을 진행토록 만드는 뇌물 수수 등의 관행이 있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2017년 4월 흉기를 소지한 채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운 뒤 체포된 가출 소년(당시 15세)은 경찰 측이 “18세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감옥에 갇혔다. 2개월 후 치아 검사로 15세라는 사실이 입증돼 ‘석방 명령’이 내렸지만, 여전히 풀려나지 못했다. 사회복지국에서 교도소로 최종 통보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그 결과, 유죄 판결 시 형량(벌금 4달러 또는 15일간 구금)보다 훨씬 더 긴 1년9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 소년은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런 요인들로 포화 상태가 되다 보니, ‘통제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NYT는 진단했다. 교도소 측이 감옥 내 혼란 방지를 위해 갱단 출신 수감자들에게 “다른 수감자들을 관리해 달라”면서 통치권을 ‘위임’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닐라시티 교도소 내 경제, 치안도 ‘시구에 시구에 스푸트니크’ 갱단 두목이었던 부보이 멘디올라(37)가 감독하고 있는 상태다. 자이레 부스티네라 교도소 대변인도 “공식적으로는 수감자가 다른 수감자를 감시하는 걸 불허하지만, ‘자원 부족’ 때문에 비공식적으로나마 그렇게 하고 있다”며 “여기엔 평화와 질서의 균형이 있다”고 인정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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