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처럼 잘록한 허리에 길고 가는 목. 1959년에 처음 만들어진 바비인형은 반세기 가까이 욕망의 상징이었다. 국적을 뛰어넘어 세계의 아이들은 인형을 품에 안고 바비 인형 같은 여성이 되길 꿈꾸며 성장기를 보냈다.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이 ‘바비인형은 완벽한 여성’이란 농담 같은 진담을 입버릇처럼 주고받으면서 바비인형에 대한 신화는 더욱 굳어졌다. 바비인형이 장난감을 넘어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된 이유다.‘우리를 만든 장난감들’이란 뜻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토이즈 댓 메이크 어스’란 제목처럼 바비인형은 ‘우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엔 ‘늘씬한 금발’에 비현실적인 몸매로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겼다는 미운털이 톡톡히 박혔지만.
올해‘환갑’을 맞은 바비인형을 만든 완구업체는 미국의 마텔이다.바비인형뿐 아니라 토마스와 친구들 등 전세계 어린이들에 사랑받는 장난감을 두루 만든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유명하다. 이 기업이 한국의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인형을 제작한다. 세잘 샤 밀러 마텔 부사장이 지난 7일 홍콩에서 열린 완구게임 박람회에서 밝힌 방탄소년단 인형 제작 이유는 이랬다. “방탄소년단은 연령, 문화, 언어를 초월하는 대중문화의 현상입니다.” 그의 말엔 방탄소년단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 됐다는 뜻이 담겼다.
마텔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인형 제작 전세계 라이선스 계약도 끝냈다.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인 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을 닮은 인형과 완구세트 등이 제작된다. 방탄소년단의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나온 멤버들 모습대로 인형은 재현된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뮤직비디오에서 형형색색의 정장을 입고 주로 나온만큼 인형은 밝고 화려한 모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 인형’은 올여름에 출시된다. 가격은 19.99달러로 예정됐다.
미국 회사가 방탄소년단 인형을 제작하기로 나섰다는 건 방탄소년단이 현지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는 의미다. 미국 초등학교 학생과 부모 사이에선 방탄소년단이 요즘 새삼 화제다. 미국 대형 출판사인 스콜라스틱이 최근 제작한 ‘초등학교 4학년 권장도서’ 잡지엔 방탄소년단 관련 책이 실렸다. 작가 카라 스티븐슨이 쓴 ‘BTS: Rise of Bangtan’이다. 스티븐스는 프랭크 시내트라 전기 등을 쓴 작가로,이 책엔 방탄소년단 성장기가 담겼다. ‘해리 포터’ 시리즈 등을 낸 스콜라스틱은 정기적으로 권장도서 목록을 뽑아 학부모에 발송해 현지에서 영향력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증거”(김상화 음악평론가)란 평가다.
마텔의 인형 제작과 초등학교 권장도서 목록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미국 주류 시장으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방탄소년단은 음반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보여줬다.방탄소년단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두 번째로 CD를 많이 판 가수로 꼽혔다. 미국 음악 산업 통계를 내는 버즈앵글뮤직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60만 3,307장의 CD를 팔았다. 75만 5,027장을 판 래퍼 에미넘에 이어 가장 많은 판매량이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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