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기업회생(옛 법정관리) 절차를 신청했다. 수빅조선소에 기자재를 납품해 온 국내 부품 업체들이 수백억원 규모의 피해를 입을 위기에 처했다.
한진중공업은 자회자이자 해외현지법인인 수빅조선소가 필리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고 8일 밝혔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장기간 이어진 조선경기 불황에다, 수빅조선소가 주력 업종으로 삼는 컨테이너선ㆍ벌크선에서 수주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주 절벽과 선가 하락을 버티지 못하고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 조선업계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선을 잇달아 수주하면서 장기불황 탈출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저부가가치 선종을 주로 건조해온 수빅조선소는 후발업체의 추격 등 극심해진 경쟁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조선업 호황기였던 2006년 부지가 26만㎡에 불과한 부산 영도조선소만으론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그 해 5월 필리핀 수빅만에 조선소를 착공했다. 2009년 완공 이전에 이미 컨테이너선 12척을 수주하는 등 일감이 몰리기도 했다. 이후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에선 해군함정 등 특수선을 만들고, 수빅조선소는 중대형 상선 위주로 건조하는 등 생산 라인을 구분해 운영해왔다. 현재 수빅조선소의 수주 잔량은 10척에 불과하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필리핀 법원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지만 청산보다는 회생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후 수빅조선소의 채권단인 필리핀 은행들이 지원 방안 등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빅조선소의 자산총액은 1조8,400억원이며, 현지인 근로자 4,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수빅조선소의 선박 건조가 시작된 2006년부터 대부분의 선박 기자재를 공급해온 부산ㆍ경남권 업체들은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법원 결정이나 채권단 지원방안이 나오기 전까지 물품 대금 지급이 유예될 수 있고, 회생 결정이 나오더라도 채무를 일부 탕감하는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대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 국내 협력업체가 수빅조선소에서 받을 물품대금은 수백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한진중공업은 부산 연구개발(R&D) 센터에 이날부터 특별상담센터를 설치, 운영 중이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법인이 다르기 때문에 본사에서 피해금액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어렵지만 국내 협력업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은 2016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어 2,500억원을 수혈 받았고, 보유 부동산과 자회사 등을 매각하는 등 자구 노력을 벌여왔다. 지난해까지 인천 율도 부지, 부산 다대포공장 부지 등을 매각하면서 1조4,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이행했다. 채권단이 제출한 자구계획 2조1,000억원의 65% 수준이다. 2015년 1,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493억원, 86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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