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나는 부족한 사람” 몸 낮춰
대학 제적 후 노동운동… 새천년민주당 창당 때 정치 입문 3선
2012년과 2017년 치러진 두 차례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핵심 역할을 했던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원조 친문 인사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당시 문 후보가 ‘정치적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의하나’는 질문에 ‘노 의원과 의논한다’고 답한 일화가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평가된다.
8일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나온 노 실장은 ‘왕실장’의 귀환이라는 평가를 의식한 듯 “저는 사실 부족한 사람”이라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어떤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며 첫 일성부터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비서일 뿐”이라며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측근 기용 및 친문 계파주의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노 실장은 정치적으로는 문 대통령의 뿌리와도 같은 ‘친노’ 그룹 출신이 아니다. 그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계파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사무총장을 맡는 등 김근태계의 핵심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탕평인사 차원에서 노 실장을 후보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이 인연이 됐다.
이후 ‘문지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들)라는 모임을 만들어 친문 세력을 구축하면서다. 전해철ㆍ박남춘ㆍ홍영표ㆍ김태년ㆍ윤호중 의원과 ‘6인회’로 불렸다. 2017년 대선 때는 문 대통령 지지모임 ‘더불어포럼’을 만들었고,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ㆍ현직 의원 모임 ‘달개비’의 좌장을 맡기도 했다.
노 실장은 앞서 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중 피감기관에 자신의 시집을 강매했다는 의혹을 받아 논란에 중심에 서기도 했다. 결국 당내 윤리심판원으로부터 당원 자격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고 20대 총선에도 불출마해야 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친문 진영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밀었지만, 친문 계파주의에 대한 우려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충북 청주 출신인 노 실장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86세대보다 선배 그룹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시절 ‘연세대 구국선언서’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는 등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제적됐다. 이후 연세대 동문이자 부인인 최영분씨와 구로구 가리봉동 공장에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한 경험으로 전기공사 2급 자격도 땄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17대 국회부터 19대까지 연달아 3선에 성공했다. 한 친문 핵심 의원은 “노 실장은 시인 출신이라 사안을 본질을 꿰뚫는 직관력이 뛰어나고 사업 경험까지 있어 시야가 넓다는 점도 장점”이라면서 “다만 워낙 머리 회전이 빠르다 보니 남 얘기를 충분히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은 단점”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이라는 대형 외교현안이 터졌는데도 주중대사가 곧바로 귀국한 데 대해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당초 전날 입국할 예정이던 노 실장은 이날 오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노 실장은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김 위원장 방중 기간에 주중대사가 자리를 비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질문에 “그러냐”고 되물은 뒤 “비판하면 할 수 없는 거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원래 한국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상시적으로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어제 밤과 오늘 아침 회의를 통해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오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김포=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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