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캠프 킴’ 군무원 출신 김원식씨
“이 자체가 공원인데 공원화 추진이라니. 테마 변경을 위한 평가를 한다며 이 곳을 수년간 비우게 되면 공들여 가꿔온 조경이 다 망가진다. 잘 관리된 원형을 유지하면서 세계평화공원으로 만들면 이 곳의 장소성과 역사성이 사라지지 않고, 관광자원도 될 수 있다.”
국가공원화를 추진중인 서울 주한미군 용산기지에서 33년간 주로 출입관리를 책임지는 군무원으로 일했던 ‘터줏대감’격인 김원식(75ㆍ사진) ‘용산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의 말이다. 최근 용산 미군기지 ‘캠프 킴’에서 만난 그는 건물 영문 간판들을 보면서도 “(공원화 하면) 이런 게 다 없어지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귀하고 비싼 골동품이 아닌 종이컵 하나라도 여럿이 함께 쓴 것이라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말이다.
정부와 서울시의 공원화 계획에 따라 옛 모습이 사라지게 될 이 곳은 그에게 어떤 기억일까. 경제성장 전 서울 한 복판에 미국의 도시 하나를 옮겨놓은 듯한 모습으로, 음식점ㆍ골프장ㆍ학교 등이 있는 이 곳은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미군 장교 부인 가운데서는 부대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단다. 그만큼 여기서 일하는 자부심도 남달랐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재벌가 며느리들이 아이들을 데려와서 놀이터에서 뛰어 놀게 하거나 영어교습을 시킨다며 장교 부인에게 식사 예절 등을 배우게 하고, 본인들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한담을 나누는 풍경도 있었다”며 “정치인, 군ㆍ경 간부, 기업인이 드나들며 18홀 골프장을 이용하기도 했다. 차 앞 쪽에 붙이고 다니던 미군부대 출입증은 사회 고위층의 신분 과시용이기도 했다”고 옛 시절을 떠올렸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거기에도 우리 삶의 기억과 질감이 담겨 있고, 그런 장소성을 일거에 지우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란 게 그의 지론이다. 이 곳은 미국 문화의 합리성을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울타리 없이 작은 잔디밭이 딸린 전형적인 미국 주택 모양을 한 관사를 가리키며 “우리 군은 부대장 혹은 간부 관사가 덩그러니 있어 누가 와도 큰 곳에만 들어간다”며 “반면 미군은 간부도 전출 순서와 가족 수에 알맞게 빈 곳을 차례대로 배정하며, 장성이라도 독신이면 독신자 관사에 입주한다”고 말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도 이 곳은 원형을 보존할 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여기는 청(나라)군, 일본군, 미군이 주둔했던 역사의 장”이라며 “후대에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하니, 원형을 없앨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공원으로 만들어 보존하면서 기억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전엔 한강 모래사장이 이곳까지 들어와 있었지만 미군이 돈 들여가며 잘 가꿔 예쁜 정원이 됐는데 굳이 없애는 것은 난센스”라며 “독일 베를린 장벽도 모두 없애버려 후에 아쉬워하지 않았나. 이 곳을 보존하면서 6ㆍ25 참전 16개국을 기리는 장소로 만들어 투어 코스를 운영하면 오히려 세계인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지 않겠나”라고 제안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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