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등 불협화음, 임기 3년 반 남기고 전격 발표
김용(59) 세계은행(WB) 총재가 임기를 3년 반 남겨둔 상태에서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다. WB의 사실상 대주주인 미국 정부와의 불협화음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 총재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임명돼 트럼프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고, 기후변화 등 여러 현안에서도 트럼프 정부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는 7일(현지시간) “극심한 빈곤을 종식시킨다는 사명에 헌신하는 열정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기관의 총재로 일한 건 큰 영광이었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WB가 발표했다. WB는 “내달 1일부터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WB 최고경영자(CEO)가 임시 총재 역할을 맡는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향후 행보와 관련해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 민간기업에 합류할 것”이라며 “민간 부문에의 참여 기회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길이 기후변화, 신흥시장의 인프라 부족 등 중요한 글로벌 이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열린 이사회에서 사임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혔으며 내부 직원들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을 지낸 보건 전문가로서 2012년 오바마 정부에서 당시 힐러리 클리턴 국무장관 추천으로 아시아계 최초로 WB 총재에 선임됐다. 그는 오바마 정부 말기인 2016년 연임에 성공해 2017년 7월부터 5년 임기를 새로 시작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 의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에 오르기도 했다.
김 총재 스스로 민간 기업 참여를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표현한 데서 보듯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이 트럼프 정부와의 불화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우선적으로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기후 변화와 싸우고 개발도상국을 돕는 WB의 정책 우선 순위가 트럼프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며 “WB는 지난달 향후 5년간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해 2,000억달러(230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미국 석탄 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약속과 달리, 석탄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재무부는 WB가 중국에 너무 많이 대출을 해준다고 비판해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김 총재가 4월 트럼프 정부로부터 WB의 130억 달러 증자를 지원 받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가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워싱턴 소식통은 “트럼프 정부 초기 거취에 불안한 시선이 있었지만 김 총재가 자본 확충에 성공하고 백악관과의 관계도 잘 풀어 트럼프 정부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여겨졌다”며 “이후 구조조정에 대한 내부 반발도 잦아 들었는데 뜻밖이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WB 이사회에 정통한 관계자 2명을 인용, “김 총재는 자진해서 떠나는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밀려난 간 아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도 소식통을 인용해 “김 총재의 (사임) 결정은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전했다.
김 총재 사임으로 후임 총재 임명을 두고 미국과 다른 국가들 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럽이 맡아왔으나 트럼프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WB 이사회의 다른 나라들이 미국이 지명한 인사를 거부할 수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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