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상품수지 흑자 증가율이 2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교역 위축,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단가 하락이 주요인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비관적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18년 11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상품수지는 79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전월(110억달러)보다 30억달러 이상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2월(59억3,000만달러) 이래 7개월 만에 가장 적은 흑자폭이다. 설 연휴로 영업일수가 적었던 지난해 2월을 제외한다면 최소 흑자폭 기록은 2017년 1월(77억3,000만달러)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품수지가 악화되면서 경상수지 흑자폭 역시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50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상품수지(수출-수입)가 악화된 것은 수입은 최근 증가세를 유지한 데 반해 수출은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수출액은 전월(1,099억7,000만달러)의 절반 수준인 517억2,000만달러에 그쳤다. 전년동월 대비 증가율은 0.5%로 지난해 2월(-5.5%)을 제외하면 2016년 10월(-6.9%) 이래 2년 1개월 만에 최저치다. 2016년 10월은 유가 하락 영향으로 2014년 5월 이래 지속된 수출 마이너스 행진의 마지막 달로, 이후 2년 간 진행된 수출 회복기가 급격히 저무는 형국이다. 노충식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수출 부진 요인 중)일시적으로 보기 힘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수출이 급감한 요인으로는 반도체 수출 부진이 먼저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월별 반도체 수출액 증가율(전년동월 대비)은 최저 28.3%(9월), 최고(53.3%)의 고공행진을 이어가다 10월 22.1%, 11월 11.6%로 뚝 떨어졌고 급기야 12월엔 -8.3% 역성장했다. 반도체 특수를 이끌었던 데이터센터 증설 수요가 줄면서 반도체 가격이 하락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내 반도체 제조기업의 주력 수출품인 DRAM 수출단가는 8월 이래 하락세(전월 대비)로 들어서 10월엔 5%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미중 무역분쟁, 중국 경기 부진에 따른 글로벌 교역 감소는 우리나라 수출의 또다른 부진 요인이다. 노 부장은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내수 둔화와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대미 수출 부진을 동시에 겪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대중 중간재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 주요2개국(G2)인 미중의 갈등으로 국제 교역 규모가 축소되는 것도 악재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세계교역 증가율은 전년동기 대비 13.5%로 호조를 보였지만 8월 8.6%, 9월 4.1%로 급속히 위축되는 형국이다. WTO의 세계교역 전망지수 또한 재작년 4분기 102.2에서 지난해 4분기 98.6으로 하락했다. 교역 위축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1월 수출 부진엔 10월을 정점으로 급락한 국제유가의 일시적 효과도 작용했다. 원유 수입은 계약부터 통관까지 60~90일가량의 시차가 있다 보니 유가가 한창 강세일 때 맺었던 계약가격이 수입액으로 잡히는 반면,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정유제품은 유가 하락분이 곧바로 수출단가에 반영되면서 상품수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만 이 효과는 유가 하락분이 수입가에 반영되면 사라질 전망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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