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 제소해도… 대법원 판결 판단 불가’ 결론에도
양승태, 담당 주심에게 “일본 제소하면 국제법적 문제 된다” 개입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심리하던 대법원 소부(小部) 주심에게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제공해 재판을 지연시킨 정황을 검찰이 포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 전 대법관의 재판개입 정황이 잇따라 확인됨에 따라 검찰이 11일 소환 조사에서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얼마나 혐의를 입증할지 주목된다.
7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013년 9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이 작성한 ‘강제동원자 판결-국제사법재판소(ICJ) 부분 검토’ 문건을 확보했다. 해당 문건은 일본 측이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ICJ에 제소하거나 국제중재 재판에 회부할 경우에 대해 검토한 내용이 담겼다. 법원행정처는 일본이 ICJ에 제소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ICJ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판단할 수 없고, 국제중재의 경우 양측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결론 지었다. 2013년 8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재상고심이 대법원 2부로 배당된 직후 이 문건이 작성된 점을 감안할 때, 양 전 대법원장 및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일본 측이 국제 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대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소부 재판부 주심이었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법원행정처의 결론과 다른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2014년 6월부터 주심을 맡은 김 전 대법관에게 양 전 대법원장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일본이 ICJ에 제소하는 등 반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법원 판결이 재판 대상이 돼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한 진술을 확보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더라도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도, 소송 지연을 위해 소부 재판에 개입했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 전 대법관은 2018년 1월 퇴임할 때까지 소송 결론을 내지 않았고, 같은 해 7월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미심쩍은 행보에 박근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를 위해 강제징용 소송 결과를 번복하거나 지연시키는 데 집중했다. 실제 2013년 8월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되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2013년 12월 공관회의를 열어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재판 지연과 전원합의체(전합) 회부, 결론 변경 등의 큰 틀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전범기업 측 대리인을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과 재판 지연 및 전합 회부 계획도 공유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구속영장에 따르면 2016년 4월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만나 사건을 전합에 회부한다는 말을 듣고 “윗선과 이야기가 됐느냐”는 취지로 물었고, “윗선과 이야기가 됐다”는 임 전 차장의 답변을 들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합 회부는 대법원장의 권한이라, ‘윗선’은 양 전 대법관이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날 고영한 전 대법관도 재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도 불러 조사한 뒤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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