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조용한 택시’ 1호 공개사이렌, 반려견 소리 등 구분HUD 영상-핸들 진동-불빛으로 표시
청각 장애인 택시기사 이대호(50)씨가 운전하는 꽃담황토색 차량에 올라 타면 “청각 장애인 기사님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 나온다. 이씨는 조수석 뒷면에 달린 태블릿 PC를 가리키고, 모니터에는 ‘마이크를 누르고 신호음이 울리면 (목적지를) 말씀해주세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승객이 “광화문으로 가주세요”라고 목적지를 말하고 전송버튼을 누르면, 운전석 앞에 설치된 태블릿 화면에 목적지가 글로 표시된다. 이씨는 검지와 엄지 두 손가락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낸 뒤 운전을 시작한다.
이씨의 택시 앞 유리창에 표시되는 헤드업디스플레이(전방표시장치ㆍHUD)에는 목적지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지도가 뜬다. 좌회전 등 차선 변경을 할 때면 미리 좌회전 화살표와 함께 운전대에 푸른 불빛이 들어온다. 내비게이션과 HUD, 운전대가 하나로 연결된 모양이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발생하는 운전자들의 경적을, 이씨는 듣지 못하지만 택시는 소리에 반응한다. ‘빵빵’ 소리가 울리면 앞 유리에 나팔 모양의 그림이 나타나 이씨가 확인할 수 있다. 경적을 울리는 차량의 위치도 오른쪽 뒤, 왼쪽 뒤로 구분돼 표시된다.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 등 긴급 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와도 이씨는 유리창의 디스플레이 화면을 보고 상황을 판단, 길을 터줄 수 있다.
7일 현대자동차그룹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주행 지원 시스템(ATC)을 일반택시에 적용한 ‘조용한 택시’를 공개했다. 지난 2017년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R&D)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ATC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차량이다.
현대차가 ‘조용한 택시’를 제작하게 된 건 지난해 6월 서울시의 1호 청각장애인 택시기사가 된 이대호씨의 사연을 접하면서다. 보청기를 사용해도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 2급인 이씨는 운전면허시험과 운전적성정밀검사를 통과해 택시운전자격을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8월엔 법인 택시회사에도 채용됐다.
하지만 이씨의 택시 운행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전용 앱을 통해 승객과 대화는 가능했지만,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라는 안내가 나오면 그냥 내려버리는 승객들이 많았다. 도로에서 경적이나 사이렌을 듣지 못해 다른 운전자와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씨의 딸은 ‘의사소통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운전 실력만큼은 보증합니다. 안심하고 이용하세요’라는 메모를 택시에 붙였지만 승객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씨의 딸이 이런 사연을 현대차그룹에 보냈고, 결국 지난달 1일 이씨에게 ‘조용한 택시’가 제공됐다.
‘조용한 택시’는 차량 내ㆍ외부의 모든 소리 정보를 시각과 촉각으로 변환해 전달하는 감각 변환 기술이 적용됐다. 즉 차량 뒷 유리 하단 양쪽에 부착된 오디오센서와 후진센서를 통해 소리를 모은 후, 차량 안의 제어장치에서 주파수 대역별로 구분해 내비게이션과 HUD, 운전대를 통해 시각화하는 방식이다.
박형준 현대차그룹 연구원은 “청각 장애인들은 시각과 촉각이 예민하다는 점에서 고안한 것”이라며 “운전 중 듣게 되는 소리를 패턴화한 후, 이를 구분하는 인공지능 기능을 이용해 전환ㆍ표시해줬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조용한 택시’에 적용한 ATC기술의 다양한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30만명의 청각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라는 시장 수요만 확인되면 대량 양산에 들어갈 수 있다”며 “앞으로도 자동차가 이동 수단을 넘어 삶의 동반자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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