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사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3>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모두 화딱지가 나있잖아요.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놈은 좌빨, 저놈은 꼴통보수. 전부 구속시켜서 엄벌해야 할 놈 천지’이고. 필요한 문제의식이 있겠으나, 과민반응도 많죠. 위아래가 뚜렷이 분리된 계층화, 어디서든 한 번 밀려나면 좀처럼 기회를 찾기 어려운 가능성의 실종, 존재의 위협이 만든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이에요.”
최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혐오와 갈등이 커지는 파편사회의 배경으로 “누구라도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의 불평등, 이와 궤를 함께하는 불공정”을 지목하며 “통계로 입증이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토지경제학, 환경경제학 등을 토대로 사회적 신뢰, 인간의 행복에 주목하는 한편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촉구해 온 경제학자다.
그는 철학자인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울혈(鬱血) 사회’ 개념을 인용하며, 우리 사회가 필요 이상의 집단 화병을 앓는 이유가 “과정의 공정성, 결과의 공평성에 대한 신뢰가 꾸준히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적절한 정부의 개입이 부족하다는 불신“에 있다고 했다. 금수저ㆍ흙수저 사회의 구조는 꾸준히 굳어지는데도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공교육 시스템 정비, 복지 확대, 조세개혁 움직임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판단이 신뢰와 관용의 상실, 갈등 증폭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불평등은 있죠. 과거에도 있었고. 그런데 다른 잘사는 사람이 있어도 용납되는 불평등의 시기가 따로 있어요. ‘어 저 사람 부자야? 나도 열심히 해서 되면 그만이야’라고 할 수 있는 때가 그렇죠. 발전이 빠르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성장의 과실이 퍼져나가는 시기 얘기예요. 문제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불평등은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불평등 심화가 비단 국내적 상황만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유독 심각하게 방치돼 왔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세계적인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와 기술 진보가 좋은 일자리를 줄이고 소득 불평등을 키울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진행돼 온 것에 더해, 특히 국내에서는 지난 20~30년간 이 충격을 완화해 줄 장치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 명예교수는 “80년대까지 좋은 일자리 수요가 확 늘어나는 자본주의 최고 전성기가 온 이후, 기술 진보와 세계화로 인해 소위 대졸자를 위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중산층이 사라져 양극화가 시작되는 것은 선진국에서 대체로 드러나는 전반적 흐름”이라면서도 “충분한 사회보장책으로 이를 보완했느냐, 방치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랐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기술이 진보한다는 건 점점 노동 대신 자본이 일한다는 얘기잖아요. 육체노동자 대신 기계를, 지식노동자 대신 인공지능(AI)을 쓰는 사회로의 변화. 세계화도 마찬가지죠. 공장을 저임금 국가로 빼내는 건 두드러진 현상이죠. 기술진보는 그냥 보고만 있으면 빈부격차를 벌리는 쪽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어요.”
그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평등론을 거론하며, “피케티가 세계를 감복시킨 건, 이를 데이터로 입증하며 정치의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인데 “그 와중에도 우리 사회 일각은 이를 심각하게 읽어내긴커녕 ‘한국 상황에는 맞지 않다’는 핑계만 대기 바빴다”고 지적했다.
서로 다른 현실 인식은 빈부, 노사, 세대 갈등을 한꺼번에 유발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두 세대가 공존해요. 돌아오지 않을 가슴 벅찬 시절(고성장 시대)이 그리운 구닥다리 세대, 그들이 뽑았던 대통령 때문에 기쁨을 잃은 나라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 갈등의 골이 깊죠. 또 두 세대 모두에게 일할 곳이 없는데도 왜 일하지 않느냐고 닦달하고, 돈이 곧 실력이 되고, 금수저가 갑질하는 사회, 저성장의 기조가 굳어지는 사회이기도 해요. 화가 나는 게 당연하죠. 그렇다고 화만 내고 있을 순 없지만.”
지난해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주적은 불평등이다’(개마고원 발행)를 펴낸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문제를 다룬 다음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고학력 노동자의 대량실업이 현실로 닥치기 전에, 기본소득 등 각종 복지 시스템 구축에 대한 본격적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한국 사회가 이 고민을 “선진국답게 좀 했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사회복지 지출 모두 끄트머리, 딱 후진국 수준이에요. 복지 지출 말만 꺼내도 화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물으면 간단하죠. 기술 진보는 점점 빨라질 텐데 10%의 자본이 아무리 생산해대도, 90% 노동자가 손가락 빨면, 그 물건은 다 누구한테 팔려는 거예요?”
이런 수저론 사회, 기회실종 사회의 최대 비극은 감정적 판단과 포퓰리즘의 기승이다. 분노나 혐오 감정에 압도돼 객관적 자료나 통계도 외면하는 태도의 만연이다. 그는 이런 자세를 ’비합리적 유식’이라고 불렀다.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내 맘에 드느냐 안 드느냐’를 기준으로 지식을 흡수하면서도 일종의 확신을 가진 상태다.
“객관적으로 설명해줘도 구미에 맞는 정보와 자료만 수용해 화를 내요. 이러면 현실에 대한 착각과 편견이 만연하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선동가형 정치인에게만 주목하게 돼요. 포퓰리즘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위기의 신호죠.”
또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상황을 가장 아프게 생각해야 한다는 경고도 부연했다. “정말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원한다면 보수에서 먼저 ‘화딱지를 유발하는 불평등, 불공정을 해소하고, 갈등을 풀고, 비합리적 유식을 탈피하자’고 해야죠.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잖아요. 각박해지고, 비참해지고, 멍드는 것은 다 그냥 두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모순된 주장을 계속한다면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 명예교수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반발하는 촛불집회 국면을 보며 “다행히 비합리적 유식의 무리가 우리 사회의 다수는 아니구나”라고 느껴 안심했다면서도 “시민들의 촛불혁명 정신이 광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살아 있어야 현 위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혐오, 분노, 배제의 형태로 쏟아져 나오는 사회 갈등 수준이 심각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아우성이 쏟아지고 제기돼야 정치권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 사회가 발전하는 원동력은 ‘평등한 상태에서의 협동'에 있다고 하잖아요. 빈부 격차는 불신으로, 불신은 분노로, 분노는 혐오로 끓어오르죠. 야박하고 매몰찬 비난만 남은 시대에선 누구도 결코 안전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는 걸 정치권, 언론, 시민사회가 너무 늦기 전에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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