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도되거나 北에 적대 활동할 땐 북미 긴장 불가피
美 “답변 못해” 北도 침묵 일관… 우리 정부도 함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작년 11월 부인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오른쪽에서 두번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같은해 3월 이탈리아 베네토주 트레비소 인근에서 열린 한 문화 행사에 참석한 모습. 오른쪽부터 발렌티노 페린 이탈리아 상원의원, 조 대사대리, 브루노네 데 포폴(파라 디 솔리고 교구 사제) 신부, 신원 미상의 북측 외교관. AP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잠적한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미국 망명을 원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망명지가 어디로 정해질지 북미간 비핵화 협상 국면에 파장이 일고 있다. 자칫 양측 협상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과 미국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며 신중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조 대사대리의 잠적 사실이 밝혀진 지난 3일 이후 그의 행방과 향후 거취를 둘러싼 관측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5일(현지시간) 조 대사대리가 자취를 감춘 11월 현지 정보당국이 제3국에 도피해 있던 그를 찾아내 이탈리아로 데리고 왔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보기관에 연락해 정보를 공유하고 당국간 공조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조 대사대리는 현재 자신의 신병을 둘러싼 해법을 기다리면서 비밀장소에서 이탈리아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 대사대리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지가 초미의 관심사지만, 어디로 망명하든 미국 정부가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미국으로선 조 대사대리의 대(對)유럽외교, 밀수 정보 등을 확보해야 할 유인이 크고, 조 대사대리 입장에서도 미국의 보호막 아래서 가족의 안전을 꾀하는 게 최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 정부가 현재 진행중인 비핵화 협상을 고려해 조 대사대리를 본토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전세계 미 중앙정보국(CIA)과 대사관 등을 통해 그를 책임지고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조 대사대리는 미국 망명을 원하지만 신병 관련 협의는 미국, 이탈리아와 복수의 제3국이 진행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북미 모두 비핵화 협상 재개를 기다리는 시점에서 이번 사태가 변수로 등장하길 꺼리고 있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 친서를 주고 받으며 2차 북미정상회담 등 협상 진전을 꾀하는 가운데, 조 대사대리가 미국으로 인도되거나 북한에 적대적인 활동을 할 경우 북미간 일시적인 긴장조성이 불가피하다. 미 국무부가 4일 조 대사대리의 미국 망명설과 관련해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신변안전이나 재산보호,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사건과 쟁점에 대해선 답변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 대사대리의 이탈 소식을 먼저 인지했을 북한이 이 문제가 전세계에 알려진 뒤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 분석이다.

곤란하기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미국과 북한, 이탈리아 등 직접 관계국이 아닌 한국 언론을 통해 조 대사대리의 망명 소식이 터져 나왔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기대하는 정부로서는 조 대사대리의 움직임에 관여해 북측의 대남 불신이 싹트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외교부 등 우리측 관계 부처는 조 대사대리의 망명 경위나 추후 거취와 관련 “아는 바가 없다”며 현재까지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 대사대리의 거취가 상당기간 수면아래 놓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김한솔(24)군을 비롯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 고(故) 김정남의 가족들처럼 은신생활을 계속하도록 관련국이 공조할 것이란 판단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도 신년사를 통해 평화분위기를 띄운 상황에서 이 건으로 협상을 뒤엎진 않을 듯 하다”며 “다만 사안의 성격상 비핵화 협상이 완전하게 안전궤도에 오르기까지, 또는 영원히 조 대사대리의 소재는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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