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수급연령 먼저 도달한 남편에 몰아줘… 여성 국민연금 수급권 강화 위해 개선책 필요
출산ㆍ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을 위해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출산크레딧’제도의 수혜자 절대 다수가 남성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연금수급권 강화를 위해 보다 전향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도입된 출산크레딧은 아이를 낳은 부모는 일정기간 연금보험료를 낸 것으로 간주, 그만큼 얹어주고 수급시점에 추가된 연금액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연금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효과가 발생한다. 남녀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사실상 출산ㆍ육아로 인한 경력단절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은 여성의 수급권 강화가 목표다.
6일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2011년 42명이었던 출산크레딧 수혜자는 지난해 6월 현재 964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출산크레딧 수급자의 절대 다수는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기준 출산크레딧 수급자 964명 가운데 남성이 953명으로 98.9%를 차지했다. 여성은 단 11명에 불과했다.
이는 실제 혜택과는 무관하게 남성이 받았을 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출산크레딧은 부부 합의 하에 각각 받거나 한 쪽에 몰아줄 수 있다. 문제는 누가 얼마나 받을지를 결정하는 시점이 부부 중 한 명이 연금수급연령에 도달한 때라는 점이다. 부부 중 보통 수급연령에 먼저 도달하는 남성에게 이를 몰아줘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노동 및 육아 때문에 여성이 출산크레딧을 받을 정도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채우기 쉽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말 59세를 기준으로 남성 가입자의 납부이력은 평균 15년7개월인 반면 여성은 8년1개월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 기준 매월 100만원 이상 국민연금을 받는 남성은 19만3,826명이지만 여성은 3,797명으로 남녀 간 연금액수 격차도 크다.
전문가들은 수급시점이 아닌 출산시점에 누가 크레딧을 받을지 결정하도록 하는 등 정책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출산이 이뤄지는 시점과 국민연금 수급 시점 간 수십년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 연금수급권 강화’라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측면이 있다”며 “출산 혹은 입양 시점에 크레딧을 곧장 지급하면, 여성이 받을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2015년 보고서에서 “크레딧 적용을 출산시점에 하되 우선순위를 ‘주된 양육활동 제공자’로 두고, 만약 이 사람이 국민연금 수급권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에 한해 사후에 적용 대상 변경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궁극적으로는 출산크레딧뿐만 아니라 대체로 여성에게 불리한 분할연금ㆍ유족연금 등의 지속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산크레딧만으로는 여성의 노후소득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며 “분할연금ㆍ유족연금 확대뿐만 아니라 해외처럼 양육ㆍ돌봄크레딧 신설 등 다양한 구상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일ㆍ가정 양립 환경을 보장해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 활동을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출산크레딧은 둘째아이부터 12개월을 지급(셋째부터는 18개월 지급)하는데 복지부는 지난달 내놓은 국민연금종합계획안에서 첫째아이(6개월 지급)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국회에 제안하는 등 대상자는 앞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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