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 첫날 강원도 양양일대에 대형 산불이 났다.
불은 1박 2일 동안 축구장 면적의 28배(20㏊)에 달하는 지역을 잿더미로 바꾸고 나서야 진화됐다. 봄을 앞두고 새싹을 틔우려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겼고, 땅속에서 발아를 기다리던 송이 균사체들은 시커멓게 타버린 채 명을 다했다.
공기보다 무거운 매캐함이 가라앉자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들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다.
지난 1일 오후 4시 12분께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진화에 투입된 인력만 1684명. 진화 헬기 23대, 진화차 18대, 소방차 72대로도 모자라 진화 작업은 다음날인 2일 12시까지 계속됐다. 다행히 초기 대응이 빨랐고, 대규모 화재진압 장비와 인력 투입으로 불이 민가로 번지지 않아 인명피해는 없었다.
지금은 잔불이 완전히 잡혀 소방당국의 완전진화 선언이 있었지만 언제 다시 잔불이 나타날지 몰라 뒷불작업 감시반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에게는 불안한 날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들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그 수치를 가늠하기 힘들어 보인다. 특히 불이 난 지역은 송이 농사로 수익을 내던 주민들의 터전이었다. 12가구가 송이 채취로 매년 거두던 수익은 각 2-3000만원. 총 2억 5천에서 3억원 안팎. 더 큰 문제는 산림 복구가 된다 해도 포자가 생기고, 송이 생산까지 최소 10년에서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양양군 주민들은 2005년 4월, 낙산사와 보물 제479호 낙산사 동종이 산불로 녹아버린 대형 산불의 상처를 갖고 있다. 때문에 주민들 역시 노심초사하며 마음을 졸이는 분위기였다.
발화지점인 마을 입구 바로 앞 산 주인의 지인이라는 주민은 화재현장을 찾아 "지금 산 주인과 통화가 안된다. 걱정이 돼서 현장을 왔다. 화재 현장의 절반쯤 타버린 나무들이 육안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나면 나무색이 빨간색으로 변한다. 소나무들은 다 죽는다고 보면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강원 지역에 올 겨울 산불이 잦은 것은 눈·비가 내리지 않고 있어서다. 특히 영동권은 지난달부터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보름전인 지난달 18일 건조경보가 발령된 상황이었다. 여기에 겨울철 강한 바람까지 불고 있어 작은 불씨도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김성완(49) 송천리 이장은 "예전에는 12월에 한번 큰 눈이 오고 날이 추우면 내린 눈이 녹질 않아 다음해 3월까지 눈이 그대로 있었다"면서 "그런데 요즘은 엘니뇨 현상으로 서해안, 제주 쪽에 눈이 집중된데다 찬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습기를 빼앗겨 더욱 건조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화재 발생 나흘째인 4일, 현재까지도 산불 발생에 대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발화지점이 도로변이라는 점을 근거로 담뱃불로 인한 실화 등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당시 목격자가 없어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를 수거해 산불 발생 원인을 분석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침통함만이 남은 송천마을. 이 겨울을 이겨내고 또 다시 꽃 피울 자연의 위대한 힘이 이곳에도 전해지길 바라본다. 양양=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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