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식이면 착공식이지… 외세가 강요한 비극”
北신문, 제재로 속도 못내는 남북 경협에 불만
“착공식이면 착공식이지 실질적인 착공이 아니라는 건 뭔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의 벽에 막혀 자기들 기대만큼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현실에 북한이 불만을 터뜨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북남관계는 조미(북미)관계의 부속물로 될 수 없다’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논평에서 지난해 말 개성에서 진행된 남북 철도ㆍ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형식만 갖춘 반쪽짜리’였다며 “행성의 그 어디를 둘러봐도 착공식을 벌여놓고 이제 곧 공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선포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신문은 “이번 착공식에서 남측 관계자들은 ‘분위기가 조성돼야 실질적인 착공과 준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착공식은 철도 연결을 위한 상징적인 첫 조치이다’ 등 구구한 설명을 달았다”며 “착공식이면 착공식이지 실질적인 착공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의 승인이 있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참으로 외세가 강요한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북남관계는 북남관계이고 조미관계는 어디까지나 조미관계”라는 게 신문의 주장이다. 신문은 미국이 ‘속도조절론’을 내세워 남북관계의 진척 상황을 건건이 감시ㆍ장악하고 있다며 “결국 현 북남관계는 그 누군가가 표현한 것처럼 당겼다가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용수철처럼 도무지 전진할 수 없었다”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북남관계가 조미관계보다 앞서면 안 된다며 몰상식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문은 “북남관계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움이 되고 절실할 수도 있다는 것은 지나온 한 해를 통해 미국이 더 깊이 느낀 문제였을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이 눈치, 저 눈치를 다 보며 주춤거리고 뒤돌아볼 때가 아니라 더욱 과감히 북남관계 발전을 위해 가속으로 달려야 할 시각”이라고 남측의 자세 전환을 촉구했다. “우리가 손잡고 달려나갈 때 조미관계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은 지난해가 보여준 경험이고 교훈”이라며 ‘남북ㆍ북미 관계 선순환론’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북한이 보기에 남북관계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바꿔야 하는 건 남측뿐만 아니다. 신문은 “미국은 대조선 제재와 압박의 시각에서 북남관계를 고찰하는 구시대적인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측의 이런 채근은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일 신년사 언급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현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와 미국 독자 제재 등이 유지될 경우 개성공단ㆍ금강산관광 재개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신년사의 해당 부분의 의미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북한은 모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남측이 유엔과 미국을 상대로 제재 완화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 입장은 미지근하다. 1일 KBS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ㆍ금강산관광 재개 가능성 관련 질문에 “앞으로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서 이런 문제를 논의하게 되면 여건 조성을 위한 측면도 함께 논의하고, 현 단계에서 재개를 전제로 제재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일들이 있는지 같이 머리를 맞대고 모색해 나가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합의한 바대로 현 시점에서는 우선 조건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남북 정상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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