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과정 ‘전가의 보도’ 활용… 임종석ㆍ조국 등 직권남용 심판대에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에 ‘전가의 보도’로 쓰였던 직권남용죄가 문재인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6급 주사인 김태우 수사관과 5급 사무관인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잇달아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이와 동시에 청와대와 기재부의 핵심인사들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이 ‘직권남용’의 저울대에 오른 형국이다.
청와대 현직 고위 관계자 중에서는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이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있다.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에 근거해 자유한국당이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동부지검은 청와대 압수수색과 참고인 조사 등을 거쳤으며 사실관계 파악이 마무리되면 피고발인들을 상대로 실제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사건의 핵심은 지휘 책임을 가진 이들이 김 수사관의 폭로처럼 특별감찰반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민간인 뒷조사)을 지시했는지 여부다. 대통령비서실 직제상 특감반 감찰 대상은 △행정부 고위공직자 △공공기관ㆍ단체 임직원 △대통령 친족 및 특수관계인으로 한정돼 있어, 이 외의 사람들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면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이 폭로한 청와대와 기재부의 의사결정 과정 역시 경우에 따라 직권남용죄 고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 전 사무관은 대규모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청와대 등이 적자 국채 발행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 수사관의 경우와 달리 국채발행은 정책 결정의 영역이고, 또한 문제가 된 청와대 비서관이나 기재부 간부 등은 정책 결정에 관여할 정당한 권한을 가진 이들이라 실제 기소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관측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직권남용죄를 ‘남용’한 결과 부메랑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정농단 관련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무리하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면서 정책 결정 과정은 물론 일상적인 업무조차도 직권남용의 대상에 올랐다는 지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책적ㆍ정치적 잘못을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끌어 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폭넓게 적용하기 시작하면 공직사회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정농단 수사 와중에 직권남용죄가 범람하면서 공직사회는 상당히 술렁거렸다. 과거에는 뇌물 등 명백한 범죄만 처벌을 받았지만 이제는 상급자의 무리한 지시는 물론 그 지시를 따른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공무원이 업무처리마다 유권해석을 의뢰할 수도 없으니 나중에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신재민 전 사무관처럼 폭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은 물론 검찰에서도 직권남용죄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혼란에 제동을 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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