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가수 겸 배우 다나 리브(Dana Reeve, 1961~2006)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슈퍼맨’ 남편 크리스토퍼 리브와 사별한 지 불과 1년 만이었다. 92년 결혼해 95년 낙마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남편을 보살피며, 장애인 재활과 불치병 극복 운동에 앞장서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던 그였다. 바로 직전 숨을 거둔 ABC ’월드 뉴스 투데이’ 진행자 피터 제닝스(Peter Jennings)의 사인도 폐암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CT로 암을 조기에 진단받은 폐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80%인 반면 그렇지 않은 환자 생존율은 15%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잇달아 보도했고, 시민들 사이에선 폐CT 검진 열풍이 일었다.
그 무렵 다트머스 의대 교수인 리사 슈워츠-스티븐 울로신 부부와 동료 길버트 웰치가 뉴욕타임스에 폐CT의 문제점과 생존율의 맹점을 설명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먼저 그들은 5년 생존율 단순 비교의 허술함을 설명했다. 가령 70세에 죽을 운명인 한 무리의 환자가 67세에 폐암 진단을 받은 경우 생존율이 0%이지만, (CT 조기 검진으로) 63세에 진단을 받았다면 100%가 된다는 것, 두 경우 모두 개별 환자의 생명이 연장된 건 아니라는 거였다. 그들은 일본 연구진이 같은 환자군을 대상으로 폐CT 진단을 한 결과 X-선 검진에 비해 10배 가량 이상 진단이 많았고, 폐암 사망률이 15배쯤 높은 것으로 알려진 흡연자 그룹의 폐 이상 발견 비율이 비흡연자 그룹과 거의 같았다는 사실도 예로 들었다. 그들은 폐CT가 이상유무를 판별하는 데는 획기적이지만 그것이 수술-치료가 필요한 진행성 암(progressive cancer)인지 추이를 지켜봐야 할 비진행성 암인지 구분하게 할 만큼 정밀하지는 않으며, 이상 진단을 받은 환자 대부분이 조직검사를 받아 일부는 폐확장부전(collapsed lung) 등 부작용으로 입원을 하고,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한 도시에서 만성 기침이나 체중 감소 등 뚜렷한 증상으로 한 해 1,000명이 진행성 폐암 진단을 받고 5년 뒤 그 중 150명이 생존했다면 생존율은 15%다. 만일 시 당국이 시민의 폐CT 검진을 의무화해 5,000명이 폐암 진단을 받고 그 중 4,000명이 비진행성 암이라면 5년 생존율은 83%(4150/5000)가 된다. 그 단순한 생존율 착시효과가 메이요클리닉의 무작위 테스트에서도 거의 그대로 입증됐다고 한다. 칼럼의 요지는 폐CT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유행’과 패닉을 경계하자는 것, ‘양날의 칼’일 수 있음을 충분히 알고 신중히 판단하라는 것, 언론의 분별없는 선정적 보도에 현혹되지 말라는 거였다.(NYT, 2005.8.22)
병증에 대처하는 기준과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다. 의사 중에도 선제적ㆍ공격적인 치료를 선호하는 이가 있고, 최소한의 의료적 개입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이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가 검사-진단-치료 과잉이고, 다른 극단에는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처럼 현대의학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의학자로서 슈워츠-울로신 부부가 주로 경계한 건 전자였다. 그들은 “미국인들의 보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조류 독감이나 웨스트 나일(West Nile, 뇌염의 일종), 광우병 같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건강관리 시스템 자체”라고 주장했다.(NYT, 2007.1.2) 예전 같았으면 일상의 불편이라 여겼던 증상들이 쉽사리 질병으로 진단되는 추세, 예컨대 불면증이 수면장애, 슬픔이 우울증, 다리를 습관적으로 떨면 하지불안증후군, 성충동 저하가 성기능장애가 돼버린 현실을 그들은 우려했다. 아이들의 경우 “운동 후 기침만 해도 천식이 되고, 책 읽는 걸 어려워하면 난독증, 우울해하다가 금세 활기를 보이면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곤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 중 증상이 심각한 일부는 적절한 진단-치료가 필요하지만, 증상이 경미하거나 단속적이거나 일시적인 경우라면 과잉 진료가 된다. 그들은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조기 진단을 받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잉 진단은 제약회사와 병원, 의사, 연구기관, 국립보건원 등 질병관련 기관이 더 많은 돈과 예산을 얻게 되는 걸 의미한다. 의사가 진단에 실패하면(과소 진단)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과잉진단의 원인이다.(…) 의사들이 보다 자율적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국립보건원이 과잉 의료서비스를 규제ㆍ감축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썼다.
그들은 소비자가 해당 약품의 효능 및 부작용을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Drug Facts Box’의 시안을 직접 고안, 모든 의약품에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하도록 보건당국을 설득했다. 대학 내 ‘의료미디어연구소’를 설립, 검증되지 않은 의학 관련 연구보고서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다수의 기자들을 교육시켰다. ‘병의 유행(epidemic of disease)’ 못지않게 ‘진단의 유행(epidemic of diagnoses)’을 경계했던 리사 슈워츠(Lisa M. Schwartz)가 11월 29일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55세.
슈워츠-울로신 부부는 2002~2003년 미국심장학회와 국제AIDS컨퍼런스, 미국종양임상학회 등 5개 주요 의학회 관련 보도 187건(신문 174, 방송 13)을 분석, 2006년 그 실태를 발표했다.(ncbi.nlm.nih.gov) 우선 보도의 34%가 샘플 숫자 등 연구 규모를 밝히지 않았고, 무작위 조사인지 변수를 통제한 조사인지 등 연구 방법을 공개하지 않거나(18%) 전문가들조차 추측을 해야 할 만큼 애매하게 소개했다(35%). 의학저널에 발표되지 않은 175건의 연구보고서 기사에서는, 해당 성과가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한 기사는 단 2건에 불과했다. 부부는 “적절히 검증-평가되지 않은 예비연구 보고서는 대중에게 공개하기 이른 단계의 성과를 담고 있다”며 “물론 대중적 관심이 환자와 기부자 등의 주목을 끌어 연구비 확보에 도움을 주지만, 성과와 한계를 명확하게 밝혀 언론 보도의 오류와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8년 5월 미국종양학회에서 초기 유방암 화학치료에 효과적이라고 발표된 ‘탁센(taxanes)’의 경우, FDA 승인(99.10)과 동료평가를 거쳐 저널에 발표(2003)되기 전부터 폭발적으로 소비(처방)됐고, 그 효능에 대한 반론은 지금도 제기되고 있다. 비소세포성폐암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표적항암제 ‘이레사(Iressa)’의 경우 2003년 FDA의 승인을 받고 1년여 사이 전 세계 약 20만여 명이 투여 받았지만, 2004년 위약 통제 임상시험 결과 진행성 폐암 환자의 수명 연장에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특정 환자군에선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이후 시험에서, 비흡연자, 여성, 동양인에게서 흔히 발병하는 EGFR(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돌연변이 폐암 환자군의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입증됐다.) 1998년 5월 뉴욕타임스가 동물 종양실험에 효과를 보인 두 개의 혈관신생억제 복합신약(andostatin, angiostatin)을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왓슨과 미 국립암연구소(NCI) 소장이던 리처드 클라우스너의 긍정적 평가까지 곁들여 보도했다. 전국의 종양클리닉은 인체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저 약의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았고,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의 일부 환자들은 시판을 기다리겠다며 표준 항암요법을 거부하기도 했다.(journalofethics.ama-assn.org)
CT와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등 혁신적 진단 기법으로,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 진단이 증상 없는 초기 단계에서 가능해졌다. 전문가 집단이 정하는 당뇨나 혈압 콜레스테롤 비만 등의 이상 진단 기준도 지속적으로 낮아져왔다. 당연히 ‘환자’가 늘어났다. 슈워츠는 한 여름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 중 약 40%가 한 종류 이상의 만성 처방약을 복용하는 현실, 저 기준들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미국 총 인구의 50% 이상이 환자로 진단받을 수 있는 현실을 불합리하게 여겼다. 그는 ”전 국민이 콜레스테롤 혈당 체질량지수(BMI) 당뇨 검사를 받는다면, 아마 성인 4명 중 3명은 환자로 분류될 것”이라며 “절반 이상이 비정상이라면 정상이란 걸 어떻게 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NYT, 2018.12.6)
리사 슈워츠는 1963년 6월 30일 뉴욕 브롱크스에서 전기 기술자 아버지와 직업재활 상담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빙엄턴의 뉴욕주립대(현 빙엄턴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뉴욕대 의대에서 의학박사(MD) 학위를 받았고, 맨해튼 벨뷰메디컬센터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90년 울로신을 만나 92년 결혼했다. 부부는 94년부터 다트머스대에서 2년 연구원으로 함께 일했고, 슈워츠는 거기서 약학 석사학위를 추가로 받았다. 뉴욕 로이스트사이드와 차이나타운서 일하던 레지던트 시절, 동일 환자군에 대한 진료ㆍ처방이 제각각일 때가 많고, 진단 장비는 최첨단으로 갖추면서 영어에 서툰 이민자 환자들을 위한 통역사는 고용하길 꺼리는 현실을 경험했다고 한다. 부부는 나란히 다트머스 가이젤 의학원 교수가 됐고, 평생 같은 분야, 즉 과잉 진단-치료의 문제점과 정확한 질병 및 의약 정보 보급을 위해 함께 연구했다. 2011년 미 국립보건원의 후원을 받아 의학 언론보도 관행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기자들을 교육하는 ‘의료 미디어 센터’를 설립해 공동센터장으로 일하며, 다양한 매체에 활발히 글을 썼다. 슈워츠는 “연구와 강의, 나머지 삶 전부를 울로신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을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영리 보건기업인 애버트 연구소(Abbott Laboratories)가 2007년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저하증을 경고하는 캠페인 ‘Is It Low-T?’를 시작했다. 중년 이후 살이 찌고, 근육이 줄고, (성적으로) 무기력하고, 쉽게 짜증을 내게 되는 게 테스토스테론 감소 때문이니, 호르몬 검사를 받고 관련 제제를 투여해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거였다. 외상이나 화학치료, 유전 질환 때문에 테스토스테론 생성 기능이 저하된 이들에 한해 적용되던 표준치료가 단순 노화로 인한 증상 일반으로 확대됐다. 심장질환자의 심장마비와 뇌졸중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밝혀져 FDA가 저 캠페인을 규제한 것은 7년 뒤인 2014년이었고, 그 사이 미국서만 2,500만 건 97억 달러어치의 테스토스테론 제제가 처방됐다(WP, 2015.6.7). 1999년 미국우정공사가 전립샘암 진단검사를 홍보하는 기념우표를 발행하자 부부는 질병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과잉 검사를 부추기는 행위라며 “어찌 된 게 우정공사까지 진료서비스를 홍보하는 지경이 됐는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부부가 ‘Drug Facts Box’를 고안해 모든 의약품 용기에 부착하도록 제안한 건 2013년이었다. FDA는 아직 최종 선택을 미루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환자보호 및 건강보험개혁법(Section 3507)’에 그 항목을 포함시켰다. 슈워츠 등은 국립암연구소와 공동으로 국가 통계자료를 근거로 성ㆍ인종ㆍ연령대별 주요 질병 발생 위험도를 지표화한 웹사이트 ‘Know Your Chances’를 개설했고, ‘Know Your Chances’(2009)와 ‘Overdiagnosed: Making People Sick in the Pursuit of Health’(2011)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슈워츠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매체 의학ㆍ과학 기자 500여 명을 훈련시킨 공로로 2017년 미국 의학저술가협회의 ‘존 P. 맥거번 상’을 받았다.
슈워츠 등의 입장은 물론 냉담하고 복잡한 사보험과 비싼 민영의료체제에 의존하고 있는 악명 높은 미국 의료현실에 근거한 것이다. 진단-처방의 적정 기준을 일일이 정량화하기 어렵고, 비용- 효과의 판단 면에서도 직접 환자를 대면하는 임상의와 그들처럼 빅데이터를 다루는 (예방)의학자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 의약계가 미국보다 더 윤리적이리라 여기기 힘들고, 언론의 관련 보도가 더 정밀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환자ㆍ보호자를 비롯한 시민들의 의료 지식이 더 풍부하고 의학 정보를 수용하는 태도가 더 이성적일 리도 없다. 다트머스 의대 가이젤 스쿨 동료 교수인 로버트 드레이크(Robert E. Drake)는 “리사는 (의약계) 부패와 그릇된 정보, 과학적 엄격성이 결여된 보건의료서비스에 분노하며 그 현실을 개선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숱한 오해와 비난, 푸대접을 견디며 그 길을 걸어왔다.
슈워츠는 암 진단을 받고 약 7년간 화학요법 등을 받으며 투병했다. 동료 웰치는 뉴욕타임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그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적절한 치료를 다 받았다”며 “특히 그는 올바른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바르게 살아온 사람도 나쁜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걸 환자들이 이해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웰치가 굳이 저 말을 덧붙인 까닭은, 그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그가 추구해온 바가 부정되거나 왜곡될까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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