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과 제로페이는 닮은 게 한 가지 있다. 나름 기존 체제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다만 존재감은 카풀이 압도한다. 카풀은 택시기사 반대로 서비스 도입이 미뤄지고 있긴 해도 상당수 소비자가 카풀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제로페이는 반대다. 서울시가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홍보했지만 제로페이 가맹점은 2만 곳 안팎에 불과하다. 서울시가 타깃으로 한 66만 가맹점의 3% 수준이다. 앞으로 이들 운명은 어떻게 될까. 분명한 건 제로페이는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형적 구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래형 결제방식이라고 극찬한 제로페이는 일견 훌륭해 보인다. 연 매출 8억원 이하 소상공인 가맹점(직원 5인 미만)에 한해 카드수수료를 0%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정책 취지만 봐선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최근 서울시가 내보낸 광고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자영업이 일어설 수 있도록 서울시민이 도와주세요. 제로페이로 결제해주세요.’ 힘든 자영업자를 위해서라도 서울시민이라면 제로페이를 써달라는 간절한 읍소다. 실제 제로페이는 상당 부분 이런 읍소에 기댄다. 시장 원리와 관계없이 오직 카드수수료를 낮출 목적으로만 설계됐기 때문이다.
제로페이는 QR코드를 이용한 계좌이체 방식이다. 카드망을 이용하지 않아 관련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여전히 계좌이체 비용은 든다. 이 비용은 일단 은행이 댄다. 정책 취지에 공감해서라지만 유력 정치인의 요청을 뿌리치긴 어려웠을 것이다. 제로페이가 늘수록 은행 부담이 커진다. 언제까지 읍소가 통할진 알 수 없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20여개 사업자(은행·간편결제)는 사업 시행을 기념해 10% 캐시백과 같은 한 달짜리 한시 혜택도 내걸었다. 아마 서울시 요청에 부랴부랴 이런 마케팅을 한다고 했을텐데, 이 역시 기업들 몫이다. 앞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면 이런 부과혜택을 쏟아내야 한다. 시가 거둬들이는 수수료가 제로에 가까울 거란 점을 감안하면 사업자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마케팅 비용에 못 미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민간사업자들은 당국을 의식해 성의 표시 정도는 할 것이다.
소득공제 40% 혜택 역시 공짜가 아니다. 서울시 사업을 위해 정부가 혈세를 지원하는 구조다. 그런데 실효성이 떨어진다. 5인 미만의 소상공인 가맹점에서 결제한 금액에 대해서만 40% 혜택이 주어진다. 지금도 소득공제 혜택을 더 받으려고 집 앞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찾는 이는 별로 없다. 40% 혜택을 노리고 소상공인 가맹점만 찾아 다니는 이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은 제로페이에 매력을 느껴서라기보다 서울시 광고처럼 소상공인을 도와야 한다는 구호에 끌려 가슴에 동정심이 일지 않는 이상 제로페이를 쓸 유인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제로페이를 미래형 결제방식으로 보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서 발급된 신용카드는 1억장으로 중국(6,000만장)을 훨씬 앞지른다. 중국은 부유층만 카드를 쓴다. 중국에서 QR코드 방식이 거지도 쓸 만큼 발달한 건 신용카드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아 아무나 카드를 쓸 수 없어서다. 은행업이 발달하지 않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휴대폰을 이용한 송금(엠페사)이 발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따르는 게 혁신인가.
이런 걸 다 떠나 수수료를 확 낮추면 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수수료 하나 낮추려고 민간에 부담을 떠넘기고 정부는 세금을 투입하고 찔금 혜택으로 소비자엔 써달라고 읍소하며 쥐어짜낸 정책이 과연 지속가능 할까. 제로페이 경쟁력을 키우려 할수록 딜레마는 커질 것이다. 과연 불어나는 비용은 누가 댈 것인가. 선의로 시작한 정책은 많다. 반값 아파트 ‘보금자리주택’, ‘청년희망펀드’, 기름값이 묘하단 VIP 발언에 등장한 ‘알뜰주유소’. 이들의 공통점은 초반 반짝했지만 금세 시들거나 사라졌단 점이다.
김동욱 경제부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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