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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밥상에 까만 콩 같은 똥이… 말썽쟁이 염소, 그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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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밥상에 까만 콩 같은 똥이… 말썽쟁이 염소, 그래도 사랑해

입력
2019.01.0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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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림책 작가 다시마 세이조의 ‘염소 시즈카’

나호코와 염소 시즈카가 풀밭에서 뛰어 놀고 있다. 보림 제공
나호코와 염소 시즈카가 풀밭에서 뛰어 놀고 있다. 보림 제공

어린 나호코네 집에 아기 염소 한 마리가 온다. 몸은 새하얗고 눈이랑 입이랑 코 둘레, 귓속만 분홍색. 귀여운 아기 염소다. 나호코는 아기 염소와 금세 친해진다. 아기 염소는 계속 뛰어다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밥상까지 뛰어올라가더니 까만 콩 같은 똥을 뿌린다. 줄에 매인 사고뭉치 염소가 계속 울자 나호코는 염소를 시즈카(일본어로 ‘조용’이라는 뜻)라 부른다. 시즈카는 풀을 먹고 풀처럼 쑥쑥 자란다. 다 자란 시즈카는 사흘 밤낮 울어대더니 순순히 수레를 타고 숫염소를 만나러 간다. 시즈카는 아기 염소를 낳는다. 시즈카는 아기 염소에게 젖을 주기도 하고 늑대로부터 아기 염소를 구해내기도 한다. 새끼가 풀을 스스로 먹을 정도로 크자 이내 떠나 보낸다. ‘자유의 몸’이 된 시즈카는 할아버지가 밭에 심어 논 채소를 몽땅 먹어 치우며 다시 말썽을 피운다.

어린 나호코가 바라본 염소 시즈카의 삶이다. 책은 별 거 아닌 듯 한 염소의 삶을 특별하게 그려낸다. 표지는 책이 품고 있는 내용을 압축해낸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나호코가 두 손을 번쩍 들고 폴짝폴짝 뛰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옆에는 줄에 꽁꽁 매여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을 무심히 먹는 염소 시즈카가 있다. 말 못하는 염소의 마음을 사람이 알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시즈카를 바라보는 나호코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은 염소의 일생에서 재미와 감동을 얻는다.

시즈카의 행동 하나하나는 나호코에게 감동을 안기고 의미를 준다. 먹을 것(젖)을 제공하는 가축이라는 어른들의 범상한 인식과 다르다. 어른들에게 시즈카는 할아버지의 밥상에 똥을 누거나 젖을 짜는 아빠를 발로 차는 사고뭉치에 불과하지만 나호코에게는 늑대로부터 아기 염소를 지키면서, 온 힘을 다해 키우고, 성장한 새끼를 이내 의연하게 떠나 보내는 훌륭한 엄마 염소다. 책은 나호코의 그런 마음을 따스한 감성으로 담아낸다. ‘시즈카는 울면 울수록 더 외로운가 봐요’ ‘아기를 낳은 시즈카는 우리 안을 절대로 지저분하게 내버려두지 않아요. 엄마가 되었으니까요’ ‘시즈카는 흐뭇하게 (아기 염소)뽀로를 보았지만 조금 쓸쓸해 보였어요’ 등의 내레이션이 조금은 투박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 위로 잔잔하게 포개진다.

염소 시즈카

다시마 세이조 지음ㆍ고향옥 옮김

보림 발행ㆍ208쪽ㆍ3만2,000원

일본의 유명 그림책 작가 다시마 세이조가 그의 경험을 토대로 썼다. 7권의 단행본으로 나왔던 것을 한 권으로 묶었다. 1940년대 생인 작가는 시골 마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자기의 삶과 예술의 자양분이 됐다고 밝혔다. 지금도 도시 변두리에서 밭을 일구고, 염소와 닭을 기른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실제 그런 생활이 정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적었다.

말썽꾸러기로 돌아간 시즈카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시즈카는 마치 수박씨를 내뱉는 것처럼 생각을 그때 그때 풋 풋 내뱉어 버리지요. 염소가 뱉어낸 생각들은 낮에 염소가 앉아 있는 초원에 띄엄띄엄 떠다니지 않을까요. 시즈카는 죽었지만 그 몸은 복숭아 나무 밑에 묻어주었기 때문에 시즈카의 영양이 담긴 맛있는 복숭아가 열릴 거에요. 몸은 사라졌지만 시즈카가 뱉어낸 생각들은 지금도 초원과 밭고랑을 노닐며 떠돌아 다닐 거고요.”

저자 다시마 세이조가 30대 때 직접 기르던 염소의 젖을 짜고 있다. 보림 제공
저자 다시마 세이조가 30대 때 직접 기르던 염소의 젖을 짜고 있다. 보림 제공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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