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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2019년, 대한민국호의 순항을 기원한다

입력
2019.01.0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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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호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거친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예기치 못한 암초에 걸려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가, 아니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순항하고 있는가. 적어도 후자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호가 곧 난파할 위기에 처해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난파론을 펴는 비관론자들은 선장을 바꿀 수 없다면 항로라도 바꿔야 한다고 외치고, 선장실은 배의 속도를 늦추고 더 신중하게 운항하면 되지 항로를 바꿔서는 안 된다고 응수한다.

대한민국호는 올해도 험난한 항로를 항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줄다리기와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신 냉전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고,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반자유무역주의도 완화되거나 철회될 조짐이 없다. 더구나 작년에 엄습한 기록적인 폭염과 일상화된 미세먼지 문제가 예시하듯 갖가지 환경재난이 경제와 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호 내부의 사정은 어떤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배 위의 사정은 더욱 녹록치 않다. GM군산공장을 비롯한 상당수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해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첨예화되고 있으며, 일베와 워마드의 충돌에서 보듯 젊은 남녀 사이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곳곳에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터지는 미투와 갑질폭로는 사회적 분노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4차 산업혁명의 불가피한 부작용이나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일시적인 진통이라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치자. 더 심각한 문제는 안팎의 위기를 관리하며 대한민국호의 안정과 균형을 도모해야 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험악한 외부적 여건이나 사회경제적 갈등보다 정작 정치권의 분란이 배를 더 요동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혼란의 일차적 책임은 배의 키를 쥔 선장과 항해사들에게 있다. 그들에게 맡겨진 주요 임무는 좋은 정책을 입안ㆍ집행함으로써 배 위의 선원들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엄청난 자원과 권력을 사용하고도 선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켜주지 못했다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인사ㆍ경제ㆍ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범한 실수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대신 그 책임을 전 정권이나 견제세력의 몽니 탓으로 돌리려는 태도는 무책임하며 비겁하기 이를 데 없다. 견제세력에게서 협조는커녕 비난만 초래한 빌미는 결국 현재의 선장과 항해사들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견제세력의 책임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이들은 배가 험난한 항로에 접어든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고 소모적인 비난에 열을 올림으로써 항해를 훼방하기 일쑤다. 배의 안전운항과 선원들의 행복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 선장과 항해사들의 실수나 잘못을 침소봉대하며 안보ㆍ경제적 위기감을 극대화하는 포퓰리즘적 선동전략으로 조타실을 접수하려는 권력의지만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배가 침몰해버린다면 그렇게 해서 조타실을 접수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크게 보면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세력이나 견제세력 모두 대한민국호를 함께 운항하는 동반자들이다. 다만 추구하는 가치의 우선순위와 실현방법론이 다를 뿐 대한민국호의 순항과 선원들의 번영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는 한 편인 것이다. 견제세력이 건설적인 비판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해나간다면 선원들 사이에 그들에게 조타실을 맡겨도 된다는 신뢰감이 확산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2019년 1월의 대한민국 상황은 아주 비관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 대내외 여건이 매우 열악하지만 긍정적인 요인도 없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고 수출은 6,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무역수지 흑자는 704억 달러를 기록했고 외환보유고는 4,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올해의 경제성장률도 2.7%로 예상되는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긴장완화와 경제문화협력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을 통해 비교적 투명하고 공정한 정치와 관료행정 그리고 법치주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선장과 항해사들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현실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견제세력의 생산적인 비판과 대안제시가 더해진다면 대한민국호가 의외로 순항할 개연성도 있다.

지금 한반도는 미중 간 헤게모니투쟁과 무역전쟁 그리고 북한비핵화 이슈와 한일관계 악화 등으로 큰 풍랑을 맞고 있다. 선장실은 정치력과 포용력을 발휘하여 견제세력의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폭풍우가 잠잠해질 때까지 대한민국호를 최대한 안전하게 운항해야 한다. 기해년이 저물 즈음에는 균형과 활력을 되찾은 대한민국호가 풍랑을 헤치며 힘차게 순항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비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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