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최근 연말 시상식은 긴장감 속 대상 및 수상자들을 점쳐보는 재미도, 시상식 트로피가 갖는 권위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 자리에는 세포 분열을 하듯 수없이 쪼개져 의미가 퇴색된 트로피들과 납득하기 어려운 대상 수상자를 둘러싼 논란만이 남았다.
지난 2018년 가장 먼저 연말 시상식의 포문을 연 것은 ‘2018 KBS 연예대상’이었다. KBS는 올해 대상의 주인공으로 이영자를 선택했다.
이영자가 올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독보적인 활약을 선보인 점에는 시청자들 역시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영자의 전성기를 불러온 MBC ‘전지적 참견시점’이 아닌 8년 째 MC로 출연 중인 ‘안녕하세요’로 KBS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은 이영자의 수상에 대해 “KBS에서의 활약이 아닌 타 방송을 통한 인기와 여성 예능인에게 집중된 이목 때문에 대상을 수상했다”는 지적을 낳으며 이영자의 데뷔 첫 대상 수상에 아쉬움을 남겼다.
이영자의 대상에 이어 올해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들은 무려 6명에 이른다. 버라이어티 부문, 토크&쇼 부문, 코미디 부문으로 상을 쪼갠 데 이어 공동 수상을 통해 상을 ‘나눠주기’ 한 덕분이다. 우수상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8 SBS 연예대상’의 경우 논란은 더욱 거셌다. 이승기가 ‘집사부일체’로 대상을 수상함에 따른 논란이었다.
지난 해 SBS 예능국은 ‘미운 우리 새끼’ ‘정글의 법칙’ ‘런닝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골목식당’ 등 쟁쟁한 프로그램들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대상 주인공에 더욱 관심을 모았던 바 있다. 그 가운데서도 최근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구가 중인 ‘골목식당’의 백종원은 강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SBS는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대상 트로피를 이승기에게 건넸다. 시청률과 프로그램 내 활약상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다소 생뚱맞은 결과였다. 강력한 대상후보였던 백종원은 무관으로 시상식을 마쳤다. 이후 백종원이 그간 수상을 고사했다는 사실이 전해졌지만, 백종원의 수상 여부를 차지하더라도 이승기의 수상에 대한 논란은 뜨거웠다. 영광의 순간인 ‘대상 수상’이 축하보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 이승기 본인 역시 당혹스러웠을 터다.
그나마 대상을 제외하면 ‘상 쪼개주기’ 식 수상은 나은 편이었다. SBS는 버라이어티와 쇼 토크 부문을 분리, 최우수상은 2명, 우수상은 4명의 품에 안겼다.
MBC는 그나마 지난 해 연예대상 가운데 가장 납득 가능한 대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전지적 참견시점’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이영자가 그 주인공이었다. 시상식에 앞서 공개됐던 네 명의 대상후보 전현무, 김구라, 박나래, 이영자 가운데 유력한 대상후보였던 이영자와 박나래가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들며 나름의 성공도 거뒀다.
그러나 MBC 역시 ‘상 쪼개주기’의 늪은 피하지 못했다. MBC는 버라이어티, 뮤직&토크 부문 시상을 통해 최우수상 5명, 우수상 5명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이 같은 논란은 방송 3사의 연말 연기대상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
올 한 해 드라마국의 고전을 면치 못했던 MBC의 경우 대상은 ‘내 뒤에 테리우스’의 소지섭에게 돌아갔다. ‘내 뒤에 테리우스’는 지난 해 평일 방송된 드라마 가운데 유일하게 10%대 시청률을 돌파했던 만큼, 대상 주인공에 대한 이견은 크게 없었으나 ‘내 뒤에 테리우스’와 함께 경쟁할 다른 흥행작이 없었다는 점은 한 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상 쪼개주기’는 연예대상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했다. 공동 수상의 수준을 넘어서 월화 미니시리즈, 수목 미니시리즈, 주말특별기획, 연속극 부문까지 부문을 ‘쪼개고 또 쪼갠’ 것도 모자라 공동수상을 통해 상을 나눠준 것. 실제로 MBC는 올해 최우수 연기상을 총 10명에게, 우수 연기상을 총 8명에게 ‘배분’했다. 이쯤 되면 웬만한 드라마에 주연이나 인상적인 조연으로 출연한 배우치고 최우수, 우수 연기상을 받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다.
SBS는 올해 대상의 주인공으로 ‘키스 먼저 할까요?’의 감우성과 김선아를 선정했다. ‘어른 멜로’를 표방했던 ‘키스 먼저 할까요?’의 새로운 시도와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은 두 사람의 공동 수상을 납득시켰다.
SBS 역시 다른 방송사들과 마찬가지로 월화, 수목, 주말-일일드라마로 수상 부문을 쪼갰지만, 그나마 공동 수상은 최소화 하며 ‘상 나눠주기’ 식 시상은 피해갔다.
대상 수상자에 대한 의문과 쪼개기 식 시상이 가장 도드라졌던 건 KBS 연기대상이었다. 지난 해 KBS 연기대상은 ‘같이 살래요’의 유동근과 ‘우리가 만난 기적’의 김명민이 공동 수상했다.
유동근의 연기력이야 입을 더할 필요가 있겠냐마는, 유동근의 수상이 의외였던 건 ‘같이 살래요’에서 가장 호평과 화제를 모은 인물은 장미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미희는 올해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최우수상 역시 최수종, 차태현, 장미희, 차화연 무려 네 사람이 나눠 받기 식 수상을 했다.
이 외에도 우수상은 중편드라마, 미니시리즈, 장편드라마, 일일극으로 ‘쪼개기’ 됐으며, 그 마저도 각 부문마다 3~4명이 공동 수상하며 임팩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상식을 완성했다.
위에서 언급한 최우수상, 우수상 외에도 각 방송사들은 거의 모든 시상 부문에서 ‘상 쪼개기’를 시전하며 시상식 참석자 대부분에게 상을 나눠줬다. ‘올 한 해 수고했으며, 내년에도 열심히 해달라’는 방송사들의 격려 메시지가 담긴 ‘통 큰’ 인심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수상자들 모두 지난 한 해 각자의 자리에서 수상이 아깝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시상대에 올라 감격의 눈물을 흘린 배우, 예능인들의 모습에서 감동이 느껴진 것 역시 그들의 노고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수상에 걸 맞는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연말 시상식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수선’이 필요할 때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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